김상태

[1-99] 김상태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99
  • 성      명 :김상태
  • 출생년도 :1949-04-08
  • 사망일자 :1980-05-23
  • 이장일자 :1997-05-11
  • 직      업 :자영업(슈퍼마켓 운영)
  • 사망장소 :운암동 금호고 앞
  • 사망원인 :좌우측 견부 관통총상
  • 내      용 :-그의 죽음은 지금도 계속된다
    결혼한 지 10년째 된 김상태 씨는 슬하에 1남1녀를 두었고, 아버지가 차려 준 슈퍼마켓을 운영하며 가정을 꾸렸다. 그러던 1980년 5월, 광주항쟁이 발발하고 며칠 지나자 식료품이 부족해졌다. 김상태 씨가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대리점에 가 라면을 받아 슈퍼로 돌아가고 있을 때 어디선가 갑작스러운 총성이 들렸다. 다리가 불편했던 그는 제대로 몸을 숨기지 못했고, 계엄군의 총에 어깨를 맞아 쓰러지고 말았다.
    남편의 소식을 전해 들은 아내 곽복례 씨가 사건 현장에 갔을 때, 김상태 씨는 이미 옮겨진 뒤였다. 곽복례 씨가 광주 구석구석을 살펴본 지 9일째 되던 날, 조선대병원에서 김상태 씨의 시체를 찾을 수 있었다. 곽복례 씨는 시부모님과 함께 망월동에 그를 매장했다. 후에 정부에서 보상금이 나왔고, 5·18희생자들을 국가유공자로 예우하는 법이 제정됐지만, 모든 건 허울에 불과했다. 유공자예우법에 의하면 일시금으로 보상금을 받아 연금을 받을 수 없었고, 아이들은 이미 장성해 교육지원 혜택이 없었으며 의료혜택 역시 한시적이고 제한적이었다. 이런 허울뿐인 제도는 한 가정의 가장을 대신해 줄 수 없었고, 아버지의 빈자리를 다해주지 못한 것 같아 곽복례 씨는 아이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뿐이다. (증언자 : 곽복례)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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