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수

[1-95] 김윤수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95
  • 성      명 :김윤수
  • 출생년도 :1953-04-03
  • 사망일자 :1980-05-23
  • 이장일자 :1997-05-24
  • 직      업 :운전
  • 사망장소 :지원동
  • 사망원인 :총상(좌흉부 총상)
  • 내      용 :-4대 독자 아들을 잃은 어머니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순박했던 김윤수 씨는 벽돌을 실어 나르는 덤프트럭을 운전하며 혼자되신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4대 독자라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고, 받은 만큼 그는 여유롭고 너그러운 품성을 가질 수 있었다. 1980년 5월, 스물아홉 청년이었던 김윤수 씨는 매일같이 시위에 참여해 어머니의 마음을 애타게 했다. 그러던 5월 23일, 화순에 살고 있는 누나의 집에 가기로 마음먹은 김윤수 씨는 소형버스에 열한명의 사람을 태우고 화순으로 향하다가 변을 당했다. 매복해 있던 공수부대가 불순분자를 골라낸다는 명목으로 무차별 사격을 한 것이다. 김윤수 씨는 그 현장을 빨리 빠져나가기 위해 속력을 높였으나, 총에 맞고 즉사했고 버스는 길옆으로 굴러 엎어지고 말았다.
    김윤수 씨의 죽음이 어머니에게 전해진 건 다음 날이었다. 공수부대가 물러가자 마을 주민들이 시체를 뒤져 신분증을 찾아 연락을 줬다. 누나와 매형이 김윤수 씨의 시신을 데려가려 했으나 군인들이 그를 내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뒤, 전병대에서 김윤수 씨의 시체를 찾아 망월동에 묻어주었다. 그러나 아끼던 아들을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함께 있게 하고 싶었던 어머니는 이장을 권유하는 진짜 이유를 모른 채 함평 선산으로 이장했다. 그러다 김윤수 씨가 왜 죽었고, 누가 김윤수 씨를 죽였는지 밝혀내기 위해서는 망월동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망월동으로 이장했다. 그리고 1983년, 노총각이었던 김윤수 씨는 옆자리, 1-96의 고영자 씨와 영결식을 올렸다. (증언자 : 김주산)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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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세이라 2019-11-16 08: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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