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술

[1-94] 황성술

항상 형제들은 너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너를 외롭게 혼자 놔두지 않겠다.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94
  • 성      명 :황성술
  • 출생년도 :1961-11-10
  • 사망일자 :1980-05-22
  • 이장일자 :1997-05-12
  • 직      업 :버스안내원
  • 사망장소 :광산 동곡 하산교
  • 사망원인 :차량사고
  • 내      용 :-용서?
    집에서 응석받이로 자란 황성술 씨는 공부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방위병으로 일하는 형 황옥슬 씨와 광주에서 자취하며 지냈던 것이 이유라면 이유였다. 온순하고 순진한 구석이 있었던 황성술 씨는 삼촌이 운전하던 버스안내원을 하며 운전을 배우고 있었다. 1980년 5월, 광주항쟁이 발생했지만 황옥슬 씨는 현역 대기병이었던 관계로 비상근무를 서느라 집에 들어갈 수 없었다. 때문에 황성술 씨는 자연스럽게 시위에 가담하게 됐고, 21일 도청을 사수하는 과정에서 시민군이 획득한 군납용 레카차를 운전했다. 열여덟의 어린나이였지만, 운전을 자신의 생업으로 삼을 생각을 하고 있었던지라 황성술 씨는 제법 운전을 잘 했다. 그는 사람들과 해남으로 갔고, 그곳에서 나주로 향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총격을 받았고 6명이 타고 있던 레카차는 물에 빠졌다. 중간에 튕겨 나간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은 모두 익사하고 말았다.
    광산경찰서의 신고를 받은 그의 아버지는 시신을 수습해 동곡 공동묘지에 장례를 치렀다. (증언자 : 황옥술)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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