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광수

[1-93] 함광수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93
  • 성      명 :함광수
  • 출생년도 :1963-08-23
  • 사망일자 :1980-05-22
  • 이장일자 :1997-06-14
  • 직      업 :미장공
  • 사망장소 :농성동(자택 옥상)
  • 사망원인 :총상
  • 내      용 :-나는 우리집 옥상에서 죽었다
    함광수 씨는 넷째 중 둘째였다. 광천동에 살던 그의 가족은 연립주택에 세 들어 살며, 농성동에 새 집을 짓고 있었다. 함광수 씨는 종종 농성동으로 아버지를 쫓아가 미장일을 배우는 등, 새 집을 짓는 데 많은 일을 했다. 1980년 5월 22일, 당시 농성동 사거리는 시민군이 바리게이트를 설치하고 신학대 앞에 주둔하고 있던 계엄군과 대치하고 있어 분위기가 살벌했다. 오전에 꾸중을 듣고 집을 나선 셋째를 찾기 위해 함광수 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나갔다가, 탱크를 앞세우고 진격하는 계엄군의 행렬을 보았다. 탱크를 처음 본 함광수 씨는 건물 옥상에 올라가 탱크를 구경했으나, 곧 계엄군이 주택가를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하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동네 사람들이 시체를 옥상에서 내려, 집 앞으로 옮겼으나 잠시 후 군인들이 와서 싣고 갔다.
    아버지는 함광수 씨의 시체라도 찾아야 한다며 매일 상무대로 달려갔지만, 상무대 측에선 아는 척을 하지 않아 빈손으로 집에 돌아가야만 했다. 그러다 함광수 씨가 상무대 사격장에 가매장 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곳에 가 함광수 씨를 찾아 화장시켰다. 가족들은 함광수 씨를 고향 나주에 묻었다가, 후에 망월동으로 이장시켰다. 아버지는 아들을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 유족회 활동에 참여하다가 1986년 직장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 박남례 씨는 남편의 유지를 이어 유족회에 가입, 활동했다. (증언자 : 박남례)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추모글을 남겨주세요

5·18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정신과 역사적 의의를 왜곡하려는 그 어떠한 글이나 정보는 예고없이 삭제하오니 이점 양지하시기 바라며,
경우에 따라서는 법적인 책임도 물을 수 있음을 고지하는 바입니다.

댓글등록
추모글은 100자 이내로 작성해 주세요.현재 0자 (최대 100자)
:
:
추모글 입력

: 아래 새로고침을 클릭해 주세요. 새로고침

  • 함광수씨는 탱크를 구경하려고 하시다가 돌아가셨고 다행히 시체를 찾아 화장을 시켰습니다 계엄군은 피도 눈물도 없이 사람을 무자비하게 죽인다는점에서 사람이 아니라는것을 느꼈어습니다

    김온유 2019-05-15 14:06:2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