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희

[1-92] 최승희

오빠의 말씀 따라 동해바다 푸른 물결처럼 맑고 바르게 살렵니다. 당신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으니 이제 편히 잠드소서.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92
  • 성      명 :최승희
  • 출생년도 :1960-10-04
  • 사망일자 :1980-05-22
  • 이장일자 :1997-05-04
  • 직      업 :대학생
  • 사망장소 :전남대병원
  • 사망원인 :총상(우흉부 관통상, 간장파열 및 우측혈흉)
  • 내      용 :-조각난 어머니의 꿈
    최승희 씨는 어머니의 바람대로 의대에 가기 위해 군대까지 미루며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던 청년이었다. 군대를 미루기 위해 송원전문대에 입학을 해놓고 광주에서 하숙을 하며 대입 준비를 하고 있었다. 1980년 5월, 광주항쟁이 일어났지만, 최승희 씨는 방 안에서 공부에 집중 했다. 20일, 최승희 씨를 걱정한 어머니가 찾아와 같이 목포로 내려갈 것을 권유했으나, 괜히 밖에 나갔다가 군인들 손에 붙들릴 것을 염려한 하숙집 주인의 반대로 최승희 씨는 광주에 남고 어머니만 목포로 돌아갔다. 그러던 5월 21일, 최승희 씨는 오전까지 방안에 있다가 자전거를 타고 도청으로 나갔다가 배와 다리 가슴에 총을 맞았다. 빠르게 기독교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지만, 수술 도중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5월 24일, 뒤늦게 최승희 씨의 죽음을 알게 된 어머니는 광주로 달려가 시체를 수습했다. 그리고 고향인 해남 우수영에 아들을 묻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희망이자 전부였던 아들이 죽자 시름시름 앓았고, 최승희 씨의 동생 최애경 씨는 어머니가 오빠의 죽음으로 고통 받는 것을 보며 자신이 대신 죽었다면 차라리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최승희 씨의 죽음으로 마음 아파하던 어머니는 1986년 10월, 숨을 거두셨고 최애경 씨는 어머니의 뜻을 이어받아, 폭도라는 누명을 쓴 오빠를 위해 유족 2세들의 모임인 5월청년동지회에 가입해 열심히 일했으며 해남에 있는 최승희 씨의 유골을 망월동으로 옮겨왔다. (증언자 : 최애경)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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