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영

[1-91] 조규영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91
  • 성      명 :조규영
  • 출생년도 :1942-03-20
  • 사망일자 :1980-05-22
  • 이장일자 :1997-05-05
  • 직      업 :노동자
  • 사망장소 :화정동 잿등 한성아파트 뒷담
  • 사망원인 :총상(치골상부 맹관 총상)
  • 내      용 :-문을 열고 들어설 것만 같은 남편
    사촌 처남이 운영하는 벽돌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던 조규영 씨는 방 하나 구할 여유도 없어, 공장 안의 방을 빌어 살림하며 살았다. 1980년 5월 21일, 조규영 씨는 아내 이점례 씨와 도로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헬기가 날았고, 시끄러운 방송 소리가 들렸다. 위험하니 집으로 돌아가라는 방송이 끝나기 무섭게 헬기에서, 군인들이 들고 있던 M16에서 총성이 울렸다. 조규영 씨는 이점례 씨를 먼저 피신 보내고, 자신은 공장에 남아 총성이 울리는 곳을 살피다가 다리와 복부에 총을 맞았다. 사람들에 의해 가까운 집 마당으로 옮겨졌고, 처남 최봉근 씨가 아기 기저귀로 상처를 지혈했지만, 조규영 씨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조규영 씨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최봉근 씨가 통합병원에 연락했지만, 병원에서는 시신을 직접 가지고 오라는 말만 할 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않았다. 어찌 할 바를 몰라, 신분증과 연락처를 조규영 씨의 시신과 함께 리어카에 실어 도로변에 두었다. 병원에서 데리고 갈 줄 알았으나, 시신은 그대로 실종됐고, 한참 뒤에야 101 사격장에서 발견됐다. 이점례 씨는 남편을 승주 송악면 선산에 묻은 뒤, 공방에서 나와 새집을 구해야만 했다. 궂은일을 하면서도 이점례 씨는 아이들 교육에 힘썼고, 아이들은 부지런히 자라 성인이 됐다. 이제는 노후를 바라보며 쉴 때도 됐지만, IMF로 직장을 잃은 큰아들과 대학생인 막내 때문에, 이점례 씨는 아직도 쉬지 못하고 있다. (증언자 : 최봉근, 이점례)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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