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구

[1-90] 정민구

봄·여름·가을·겨울이 흘러간 십칠 년에 만고풍상 역경 거쳐 새벽달이 밝아졌네. 명예회복 가까우니 평생염원 이제 이루어졌네. 살아서는 백년이나, 죽어서 천년 빛나지. 오월 영령이여 편안히 쉬소서.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90
  • 성      명 :정민구
  • 출생년도 :1955-03-04
  • 사망일자 :1980-05-22
  • 이장일자 :1997-05-06
  • 직      업 :회사원
  • 사망장소 :전남대병원
  • 사망원인 :총상(우견갑부 맹간상)
  • 내      용 :그 이름, 빛고을의 아들
    전남기계공고를 졸업하고 전기사 자격증을 취득했던 정민구 씨는 1980년 1월, 아버지의 권유로 아버지가 일하는 일신방직에 전기기사로 일하게 됐다. 정민구 씨는 일신방직에 다니면서 대전에 사는 한 여인을 만나 결혼날짜까지 모두 잡아놓은 상태였다. 이제 막 시작한 일과, 결혼할 사람이 곁에 있던 정민구 씨는 의욕에 차 있었다. 그러다 5월 18일, 광주항쟁이 발발했다. 21일, 아버지가 아직 학생인 정민구 씨의 두 동생을 천안으로 피신시키기 위해 잠시 집을 비운 사이, 그는 몰래 집을 빠져나가 시위대열에 합류했다. 시민군의 차에 올라타 새벽까지 순찰을 하던 정민구 씨는 22일, 계엄군의 총에 맞았다. 어깨를 관통당해 곧바로 전대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응급처치 중 숨을 거두고 말았다. 심장마비가 왔던 거였다.
    두 동생을 천안으로 보낸 아버지 정석진 씨는 장남 정민구 씨가 돌아오지 않자, 22일 새벽부터 그를 찾아다녔다. 광주역과 병원들을 모조리 뒤지다가 전대병원에서 정민구 씨를 발견했다. 신원확인 후, 수의로 갈아입히고 상무관에서 며칠을 보낸 뒤 화장했다. 그렇지만 정석진 씨는 정민구 씨를 산천에 뿌리지 않고 망월동에 안장시켰다. (증언자 : 정석진)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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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결혼할 수 있었는데 계엄군에게 맞은 총상 때문에 숨진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잊지 않고 희생 정신 끝까지 기억하도록 하겠습니다.

    효은 2021-05-17 11:5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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