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인

[1-89] 임종인

피어보지도 못하고 시들어버린 한 젊은이의 함성과 피가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함께 여기 잠들다.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89
  • 성      명 :임종인
  • 출생년도 :1959-04-09
  • 사망일자 :1980-05-21
  • 이장일자 :1997-05-05
  • 직      업 :행상
  • 사망장소 :송암동
  • 사망원인 :하악골 맹관총상
  • 내      용 :-어머니마저 동생을 따라가고
    나주 본영동에서 3남3녀 중 3남으로 태어난 임종인 씨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만 졸업했다. 작은형 임종수 씨와 함께 오일장을 돌며 과자행상을 하다가, 임종수 씨가 결혼하자 부산에 있는 큰형 임실웅 씨에게 가 살았다. 그러다 임실웅 씨가 서울로 이사 가게 됐고, 임종인 씨는 홀로 부산에 살다가 1980년 3월, 고향인 나주로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러던 중 5·18을 맞았고 21일, 트럭을 타고 나주에 온 시민군과 함께 22일, 트럭을 타고 광주로 향하던 중 매복해 있던 계엄군의 집중사격에 하학부 관통총상을 당했다. 곧바로 헬기에 태워져 상무대로 이송됐으나 5월 22일, 오후 5시 30분경 사망했고 시체는 상무대 헬기장에 방치됐다가 통합병원으로 이송 된 뒤, 병원인근 101사격장에 가매장 됐었다.
    아들이 집에 돌아오지 않자 불안해진 어머니 박판님 씨는 사방으로 돌아다녔으나 그를 찾지 못했다. 그러다 6월 초순경, 나주경찰청에서 임종인 씨가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고 서울에 있는 큰아들을 불렀다. 임실웅 씨는 현장으로 가 임종인 씨의 시체를 확인하고, 망월동 묘역에 그를 묻었다. 죽은 아들을 그리워하던 박판님 씨는 시름시름 앓다가 1982년에 임종인 씨 곁으로 떠나고 말았다. 임실웅 씨는 먼저 간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에 매년 5월 가족들과 함께 망월동 국립묘지를 찾아오곤 한다.(증언자 : 임실웅)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추모글을 남겨주세요

5·18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정신과 역사적 의의를 왜곡하려는 그 어떠한 글이나 정보는 예고없이 삭제하오니 이점 양지하시기 바라며,
경우에 따라서는 법적인 책임도 물을 수 있음을 고지하는 바입니다.

댓글등록
추모글은 100자 이내로 작성해 주세요.현재 0자 (최대 100자)
:
:
추모글 입력

: 아래 새로고침을 클릭해 주세요. 새로고침

  • 저라면 이렇게 못할것입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김윤서 2019-05-31 09:30:0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