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운 인생 죄 없이 희생되었네.
억울한 운명 어디다 하소연 할까.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88
- 성 명 :임정식
- 출생년도 :1962-03-08
- 사망일자 :1980-05-22
- 이장일자 :1997-05-11
- 직 업 :무직
- 사망장소 :화정동(국군통합병원 부근)
- 사망원인 :총상(우흉부 관통 총상)
- 내 용 :-목사가 되기도 전에 하늘의 자식이 되어
목사가 되길 꿈꿨던 임정식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학대학에 가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공부하는 틈틈이 벽돌공장에 나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일을 도왔다. 대학에 다니는 큰형과 상무대에서 군 복무 중인 둘째 형을 대신해 아들 노릇을 톡톡히 했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뭔지 고민하던 임정식 씨는 함부로 광주의 생명을 앗아가는 군부의 짓을 가만히 보고 넘어가지 못했다. 둘째 형이 말렸지만, 임정식 씨는 지금 집에만 있을 때가 아니라며 시위에 참여했다. 1980년 5월 22일, 시민과 주택가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을 쏘는 소리를 들은 임정식 씨는 집 근처 골목에 숨어 있었다. 그러다 건너편 골목에서 두리번거리며 나오는 어머니를 목격했고, 임정식 씨는 자기도 모르게 어머니를 향해 뛰어갔다가 총에 맞았다.
보호자도 없이 상무관으로 후송됐으나 아무 연락도 오지 않았다. 둘째 형 임정구 씨가 직접 임정식 씨를 찾아 나섰지만, 어디에서도 그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26일 국군통합병원에서 임정식 씨가 죽었으니 확인하라는 연락이 와 시신을 인수한 뒤, 장례를 치러 기독교인 묘지에 안장시켰다. 1997년 신묘역이 새롭게 단장 됐을 때 이장을 권유받았다. 아버지는 임정식 씨를 기독교인 묘지에 계속 두고 싶었으나 5·18 영령들과 함께 있게 해주는 것이 임정식 씨가 잊히지 않고 살아있을 방법으라고 생각해 결국, 임정식 씨를 신묘역으로 이장했다. (증언자 : 임정구)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