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충

[1-86] 이용충

그대의 희생은 절규와 절망의 순간을 넘어 생명이 있는 곳에 영원한 희망이 되리라.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86
  • 성      명 :이용충
  • 출생년도 :1954-04-18
  • 사망일자 :1980-05-21
  • 이장일자 :1997-01-02
  • 직      업 :자영업(야채청과상)
  • 사망장소 :광주교도소
  • 사망원인 :두부총상
  • 내      용 :-전두환에게 표창장까지 받았는데
    양동시장에서 야채청과물상을 운영하던 이용충 씨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 앞장섰던 사람이었다. 1980년 5월 21일, 이용충 씨는 시내에 나갔다가 유동 삼거리에서 군용트럭이 상자를 싣고 가는 것을 보고 말았다. 그는 당장 시장으로 달려가 웅성거리는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전한 뒤, 시위대와 함께 아세아자동차로 가 차량을 몰고 나와 전남대 정문으로 차를 몰았다. 그가 운전하던 차가 전남대 정문 앞 굴다리에 이르렀을 때, 총성과 함께 연막탄이 터졌다.
    동생 이장충 씨는 형 이용충 씨가 운전하는 차를 따라 뛰어가고 있었다. 이용충 씨가 운전하는 차가 전남대 정문 앞 굴다리에 도착 했을 때 울렸던 총소리를 들었고, 총성과 함께 연막탄이 터진걸 보았다. 그러나 연기가 걷혔을 때, 이용충 씨가 운전하던 자동차가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이장충 씨는 이 사실을 아버지에게 알렸고 아버지는 이용충 씨를 찾기 위해 광주와 전남 지역을 샅샅이 뒤졌다. 가방까지 짊어지고 돌아다녔지만 이미 이용충 씨가 죽은 뒤였다. 이용충 씨는 광주교도소에서 죽어 망월동에 안장된 상태였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가족들은 광주경찰서에 보관되어 있는 사체의 사진과 옷가지, 금니 등을 보고 이용충 씨의 신원을 확인했다. 가장이나 다름없던 이용춘 씨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동생 하나가 비관 자살을 했고, 이장충 씨마저도 불의의 사고를 당해 사망했다. (증언자 : 이장충)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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