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1-85] 이명진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85
  • 성      명 :이명진
  • 출생년도 :1943-01-01
  • 사망일자 :1980-05-22
  • 이장일자 :1997-05-06
  • 직      업 :자영업
  • 사망장소 :광주교도소 앞
  • 사망원인 :총상
  • 내      용 :-아들의 죽음이 남긴 것들
    부평공단에서 완구수출업에 종사하던 이명진 씨는 1980년 5월 15일, 1년 넘게 별거 중인 처자식과 부모형제를 보기 위해 광주로 내려왔다. 31사단 앞에서 살던 부모님 댁에서 머물던 이명진 씨는 밖이 소란스러우니 집에 있으라는 아버지 이안식 씨의 충고를 무시하고 농성동에 사는 형을 보러 집을 나섰다가 총에 맞아 죽고 말았다.
    이명진 씨가 돌아오지 않자 아버지 이안식 씨는 21일, 아내와 함께 시내를 돌며 아들 이명진 씨를 찾아다녔다. 조선대병원 등 병원이란 병원은 모두 가봤고, 상무대도 들렸고, 심지어는 담양 어딘가 시체들이 암매장돼 있다는 이야길 듣고 찾아가 모래밭을 다 파헤쳐보기도 했다. 그러나 어디에도 이명진 씨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이 이안식 씨를 찾아와 법원 9호 검사실로 가라고 일러줬다. 이안식 씨는 며칠을 지은 죄가 없어 가지 않겠다고 버티다가, 아들의 일이라는 귀띔을 받고서야 검사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이안식 씨는 아들의 시신이 찍힌 사진들을 보게 됐고, 이명진 씨가 망월동에 매장돼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이안식 씨는 당장 망월동 118호 묘지로 달려가 아들 이명진 씨가 묻혀 있는 걸 확인하고, 다음날 교회식으로 장례를 치러줬다.
    이안식 씨는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과 유가족들에 대한 사과를 바라며 죽은 아들의 묘를 보듬고 있다. (증언자 : 이안식)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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