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태경

[1-83] 왕태경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83
  • 성      명 :왕태경
  • 출생년도 :1953-09-13
  • 사망일자 :1980-05-22
  • 이장일자 :1997-05-05
  • 직      업 :운수업
  • 사망장소 :송암동(효천역 부근)
  • 사망원인 :총상(두정부 함몰), 타박상(우측상 하박부)
  • 내      용 :-죽은 자는 말이 없다
    3남4녀 중 장남인 왕태경 씨는 결혼한 뒤 광주에 분가해 살았다. 아버지가 준 승용차를 운전하며, 광운운수 주주인 아버지를 대신해 버스들을 관리하며 지냈다. 1980년 5월, 광주항쟁이 터졌을 때도 왕태경 씨는 시외를 다니며 아버지의 차들을 관리했다. 그러다 22일, 오전 8시쯤 광주에서 출발해 송암동 연탄공장 앞을 지날 때 갑자기 총성이 울렸다. 매복해 있던 군인들이 움직이는 모든 물체를 향해 총격을 가했고, 조수석에 앉아 있던 왕태경 씨는 머리와 어깨에 총을 맞고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부상만 입은 동료 둘은 왕태경 씨의 아내에게 소식을 전했고, 그의 아내는 왕태경 씨의 아버지에게 연락했다.
    그때부터 아버지 왕금석 씨는 아들을 찾아 광주의 모든 병원을 뒤졌으나, 어디에서도 왕태경 씨는 보이지 않았다. 일가 중에 현역 군인이 있어, 군인에게 부탁해 왕태경 씨의 행방을 수소문 했다. 그러다 상무대 연병장에 가매장된 시신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5월 31일, 왕금석 씨는 조카와 함께 상무대 연병장으로 달려갔다. 그곳에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게 부패 된 왕태경 씨가 지갑도 신분증도 없이, 3번이라는 번호를 달고 누워있었다. 왕금석 씨는 장남 왕태경 씨의 시체를 수습해 구례 선산으로 데려가 묻었다.
    왕금석 씨는 스물다섯, 장성한 아들의 죽음으로 마음에 병을 얻어 매일을 술로 달래다가 결국 모든 버스를 팔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왕태경 씨의 두 동생은 사관학교 시험을 좋은 성적으로 통과하고서도 가족 중 광주항쟁으로 죽은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합격하지 못했다. (증언자 : 왕금석)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추모글을 남겨주세요

5·18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정신과 역사적 의의를 왜곡하려는 그 어떠한 글이나 정보는 예고없이 삭제하오니 이점 양지하시기 바라며,
경우에 따라서는 법적인 책임도 물을 수 있음을 고지하는 바입니다.

댓글등록
추모글은 100자 이내로 작성해 주세요.현재 0자 (최대 100자)
:
:
추모글 입력

: 아래 새로고침을 클릭해 주세요. 새로고침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