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영

[1-82] 양희영

5·18아픔을 누구에게 말할까. 부모의 피맺힌 고통을 아들아 너는 모를 것이다. 이승에서 아버지와 상봉하자.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82
  • 성      명 :양희영
  • 출생년도 :1961-07-30
  • 사망일자 :1980-05-22
  • 이장일자 :1997-05-09
  • 직      업 :고입재수생
  • 사망장소 :백운동 철길
  • 사망원인 :총상
  • 내      용 :-두 아들을 잃고 숨죽이고 살아 온 세월
    슬하로 5남 3녀를 둔 양찬모 씨는 큰아들이 쓰던 광주 월산동 집에 셋째 양희영 씨와 넷째 양희태 씨를 보내 자취하게 했다. 영광보단 광주에서 교육받는 게 자식들에게 좋을 거 같아 내린 결정이었으나, 뜻하지 않게 때 두 아들을 잃고 말았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난리가 났다는 소식을 들은 양찬모 씨는 22일, 두 아들이 걱정 돼 아내와 함께 광주 월산동 자취방으로 향했으나 아이들은 이미 집에 없었다. 양찬모 씨는 옆방에 세 들어 살던 아주머니에게 아들의 행방을 물었고 아주머니의 말에 따라 남광주 쪽으로 방향을 잡고 아이들을 찾았다. 그러다 오후 5시쯤, 양찬모 씨는 목에 총을 맞은 채 죽어있는 양희영 씨를 발견했다. 차를 빌려 양희영 씨를 영광 공동묘지에 묻고, 양희태 씨를 찾아 23일까지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주월동 대동고 근처에서 오랫동안 방치된 시체들 사이에서 양희태 씨를 발견해, 양희영 씨와 마찬가지로 영광 공동묘지에 묻었다.
    양찬모 씨는 식구 중 5·18민중항쟁 도중에 죽었다는 것이 외부에 알려지면 좋을 거 없다는 이야기를 영광경찰서 사건과장에게 듣고, 5·18 때 죽은 이가 없다고 말해 유족보상금도 받지 못했다. 양찬모 씨의 아내는 두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1984년 5월 19일, 숨을 거두고 말았다. 아내까지 모두 잃고 난 뒤에야 양찬모 씨는 유족회의 존재를 알았고, 영광경찰서 사건과장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알고 분노해 경찰서로 가 난리를 쳤다. 양희영 씨와 양희태 씨를 망월동으로 옮기려 했지만 그것조차 방해 받았고, 사망신고 날짜가 1980년 5월 23일라는 점이 수상하다며 진상여부를 조사 받다가 결국엔 1986년 5월 14일로 정정되고 말았다. 그러다 1987년 12월 8일, 대통령 선거로 분위기가 느슨해 진 틈을 타 양찬모 씨는 유족회의 주선으로 양희영 씨와 양희태 씨를 망월동묘역으로 이장할 수 있었다. (증언자 : 양찬모)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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