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회남

[1-81] 양회남

형님아 이승에서 못다 이룬 꿈 저승에서 마음껏 이루시길…….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81
  • 성      명 :양회남
  • 출생년도 :1950-02-16
  • 사망일자 :1980-05-22
  • 이장일자 :1997-05-11
  • 직      업 :장영업(석유가게)
  • 사망장소 :화정동(국군통합병원 부근)
  • 사망원인 :총상(좌우복부 관통 총상)
  • 내      용 :-세월도 가져가지 못하는 것
    6남3녀 중 장남, 노총각 양회남 씨는 친구와 함께 석유가게를 운영했다. 직접 배달까지도 하는 양회남 씨는 열심히 일하며 동생들의 뒷바라지와 부모님 부양에 힘썼다. 화정동에 살던 양회남 씨는 계엄군의 만행을 익히 보아왔기에 그들이 무슨 짓을 하는 지 잘 알았다. 더구나 5월 21일, 도청에서 시민들의 저항을 견디지 못한 계엄군이 국군통합병원으로 퇴각하면서 화정동은 계엄군의 거점이 됐다. 때문에 양회남 씨를 비롯한 화정동 주민들은 집 안에 가만히 있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5월 22일, 오후 5시쯤 집 밖 통합병원 쪽에서 총성이 울렸고, 양회남 씨는 막냇동생과 함께 집을 나섰다. 국군통합병원에서 근무하던 방위병에 총에 맞아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었고, 양회남 씨는 그 방위병을 구하다가 그만 총에 맞았다. 양회남 씨는 곧바로 국군통합병원으로 옮겨져 수술까지 받았으나 밤을 넘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그를 병원으로 옮긴 막내 동생 양회승 씨는 형의 시체를 집으로 데리고 가려고 했으나, 군인들은 한명의 사상자라도 줄여보려는 심보로 양회남 씨의 시체를 순순히 내주지 않았다. 양회승 씨는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갔고, 군인들은 양회남 씨를 101 사격장에 가매장 했다. 후에 가족들이 양회남 씨의 시체를 수습해 망월동에 묻으려 했지만, 망월동에 안장된 시체도 가져다가 다른 곳에 매장하라고 협박하는 실정이라 어쩔 수 없이 소년원 뒷산에 양회남 씨를 안장했다. 그리고 1998년 5월, 양회남 씨는 새롭게 단장한 망월동의 신묘역으로 이장돼 다른 영령들과 함께 잠들었다. (증언자 : 양회승)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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