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옥례

[1-80] 손옥례

이승의 원과 한 잊어버리고 천상에서 나기를.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80
  • 성      명 :손옥례
  • 출생년도 :1961-05-21
  • 사망일자 :1980-05-22
  • 이장일자 :1997-05-04
  • 직      업 :무직
  • 사망장소 :미상
  • 사망원인 :좌유방부 자창, 우흉부 하악골 좌측골반부 대퇴부관통 총상
  • 내      용 :-두부처럼 잘려나간 어여쁜 젖가슴
    5·18 민주항쟁에 과정에서 불순분자들이 악의적으로 조작하기 위해 유포됐다는 유언비어 중에 대표적인 “계엄군이 여고생의 젖가슴을 도려냈다.”는 말이 사실이라는 예시는 손온례 씨의 죽음이다.
    1980년 5월 19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던 손옥례 씨는 외출이 잦다는 이유로 아버지께 심한 꾸지람과 매를 맞은 후, 친구의 전화를 받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는 그날 저녁 시내에 사는 친구네 집에서 자고 간다는 말만 남기고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친구 집을 나와 집 근처까지 온 것은 확인 됐으나 그 이후의 행방이 묘연했다. 계엄군이 물러나길 기다렸다가 손옥례 씨를 찾아 헤맸지만, 그녀는 어디에도 없었다. 5월 27일이 지나도록 찾을 수 없었고, 손옥례 씨의 오빠 손근섭 씨는 동생의 행방을 수소문 했다. 수소문 끝에 검찰청에 사망한 사람들의 신원정보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손근섭 씨는 광주지방검찰청으로 향했다. 그곳에 신원불명의 사망자들을 검시 할 때 찍은 사진이 있었다. 그 사진 중에 손옥례 씨가 있었다. 좌유방부 자창, 가슴이 잘려나가 있었고, 이미 손옥례 씨의 시체는 망월동 묘지에 가매장 돼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망월동으로 향한 손근섭 씨는 손옥례 씨가 매장되는 것을 본 뒤에 집으로 돌아왔다. (증언자 : 손근섭)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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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떻게 이런 잔인한 일을 할 수 있을까요. 독재정권에 총으로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부디 편안히 잘 계시기를...

    시비권 2018-05-16 20:53:31

  • 편안히 잘 계신가요 올해도 꼭 찾아 뵙겠습니다. 무탈하게 도와주세요.

    . 2017-02-06 16: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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