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만오

[1-78] 서만오

“자유는 새가 하늘을 나는 것과 같으며, 정의는 새가 하늘을 나는 것을 아무도 방해하지 못한다. 민주여 영원하라! ”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78
  • 성      명 :서만오
  • 출생년도 :1955-09-24
  • 사망일자 :1980-05-21
  • 이장일자 :1997-06-14
  • 직      업 :운전
  • 사망장소 :광주교도소 앞
  • 사망원인 :총상(흉부 관통)
  • 내      용 :-같은 하늘 아래에 선 사람들
    아버지가 어머니와 삼 형제를 남겨두고 세상을 뜨는 바람에, 서만오 씨는 일찍부터 가장노릇을 하게 됐다. 어려서부터 서울에 올라가서 많은 일을 하며 모은 돈으로 목장을 마련했다. 청각장애인인 막내 서만재 씨가 걱정돼 마련한 것이었다.
    1980년 5월 21일, 청각장애인인 막내 서만재 씨는 시민군의 차량을 얻어 타고 날이 바뀌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막냇동생이 걱정 된 첫째 서만오 씨는 아침 일찍 친구와 함께 동생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서만오 씨가 집을 나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막내 서만재 씨가 집으로 돌아왔다. 동생이 집에 돌아왔다는 걸 꿈에도 모르는 서만오 씨는 운암동을 지나 광주교도소로 향했다. 서만오 씨의 친구는 운암동에서 내렸지만 서만오 씨는 동생을 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끝까지 차에서 내리지 않았고, 매복하고 있던 계엄군의 총에 맞았다. 살겠다는 일념으로 보리밭에 뛰어들어, 근처에 있던 음식을 파는 차의 문을 두들겨 자신의 민증을 건넨 뒤 물 좀 달라고 했지만 물은 마실 수 없었다. 서만오 씨는 계엄군에게 발각 돼 리어카에 실린 채 교도소 안으로 사라졌고, 결국 교도소 안에서 숨을 거뒀다.
    군인들은 죽은 서만재 씨를 교도소 인근 야산에 암매장 했고 서만오 씨의 어머니가 그를 찾아내 망월동에 묻어줬다. 서만재 씨는 형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목장 일을 하는 걸로 대신하다 사고로 죽었고, 마음의 병을 앓던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말았다. (증언자 : 서만복)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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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에서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손지훈 2019-05-31 09:27:06

  •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찾으려는 노력이 죽음으로 이르게 된 것은 너무나도 슬픈 일 입니다. 동생과 함께 엔젠간 다시 만나 영원히 행복하길 바랍니다. 영원히 행복하길

    봉가영 2019-05-19 21:55:00

  • 동생을 찾겠다는 일념에 감동하였습니다. 비록 동생분을 찾지 못하였지만 당시의 노력을 저희 가슴속에 기억하겠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안민혁 2018-05-18 13:43:19

  • 당신의 희생 잊지않겠습니다

    문준희 2018-05-18 12: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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