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영

[1-77] 박재영

1955년 3월 11일 해남군 황산면 성산리 출생 1980년 5월 21일 오후 5시 광주 목포 간 경계에서 공수부대 총격으로 사망.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77
  • 성      명 :박재영
  • 출생년도 :1955-03-11
  • 사망일자 :1980-05-21
  • 이장일자 :1997-05-09
  • 직      업 :회사원
  • 사망장소 :광목간 도로(광남가든 앞)
  • 사망원인 :총상(안면부 맹관 총상), 타박상(복부)
  • 내      용 :-꿈은 어디로 갔는가?
    아버지가 없이 태어난 박재영 씨는 어머니의 재가로 할머니 손에서 외롭게 자랐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대구에서 군 복무를 마쳤다. 논산에서 기술을 배우다 목포로 내려가 조선내화에 취직했다. 직장 때문에 박재영 씨는 목포에 있는 할머니 댁에서 살게 됐다. 그곳에서 성실하게 근무했던 박재영 씨는 목포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결혼을 약속하게 됐다. 그러던 1980년 5월 21일, 처남이 될 이가 광주에서 계엄군들에게 맞아 친구네 집에 숨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박재영 씨는 약혼녀의 가족과 함께 광주가 처남 될 이를 무사히 차에 태웠다. 그리고 22일, 목포로 차를 몰았고 어쩐 일인지 계엄군이 차에 태극기를 꽂아주며 박재영 씨가 탄 차를 순순히 통과시켜줬다. 그러다 남평다리 부근을 지날 때, 차에 꽂힌 태극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격 받았다. 약혼녀의 아버지가 주민등록증을 꺼내 들며 살려달라고 빌자, 누군가 살고 싶으면 나오라고 말했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박재영 씨가 먼저 문을 열고 내렸다. 그 순간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박재영 씨의 뒤통수에 총탄이 꽂혔다. 쓰러진 박재영 씨를 군인들이 끌고 가 101 사격장에 가매장 했고, 후에 망월동에 안장됐다. (증언자 : 정방부, 박미단)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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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포라는 지역과 연관이 된 희생자 분이셔서 더 마음이 쓰입니다. 희생자분의 희생으로 일궈진 현재의 민주주의에 항상 감사함을 가지며, 민주주의 사회를 유지시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손우민 2018-05-18 12: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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