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열

[1-76] 민병열

오월의 넋이여 민주의 영혼이여. 그대 가는 길에 고통과 괴로움과 아픔이 따르더라도 그대의 거룩한 혈화 민주화를 이루었으니 모든 시름 떨쳐버리고 고이 잠드소서.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76
  • 성      명 :민병열
  • 출생년도 :1949-05-11
  • 사망일자 :1980-05-20
  • 이장일자 :1997-05-13
  • 직      업 :택시운전
  • 사망장소 :전남대학교 부근
  • 사망원인 :자상(후두부 좌창 두개골 골절)
  • 내      용 :-그 눈물 모으면 영산강을 못 이룰까
    다섯 살과 세 살 된 딸을 가진 서른한 살의 민병렬 씨는 택시운전을 하며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그해 5월 20일, 민병렬 씨는 여느 때처럼 출근했으나 일을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딸들과 놀며 마음을 바로잡으려 해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시내의 상황이 궁금해졌다. 점심을 챙겨 먹고 다시 집을 나선 민병렬 씨는 시내에 서서 시위를 지켜보다가 전남대학교로 끌려가 구타를 당해 죽고 말았다. 그리고 21일, 외각으로 퇴각하는 군인들의 트럭에 실려 광주교도소 부근에 암매장됐다.
    민병렬 씨가 돌아오지 않자, 아내 이영희 씨는 불안해졌다. 뜬눈으로 날을 지새운 이영희 씨는 다음날인 21일부터 민병렬 씨를 찾아 광주를 샅샅이 뒤졌다. 병원, 도청 등 시체가 있다는 곳이면 어디든 갔으나 민병렬 씨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양3동사무소에 민병렬 씨를 행방불명 신고했고, 6월 5일쯤 동사무소에서 민병렬 씨로 추정 되는 사람이 망월동에 있으니 가서 확인 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얼굴이 심하게 부패 돼 두 차례의 지문감식을 통해 민병렬 씨임을 확인해야만 했다. 민병렬 씨는 망월동에 안장 됐다가 후에 친정에 의해 화순으로 이장 됐다. 그리고 1997년에 다시 신묘역으로 돌아 갈 수 있었다. (증언자 : 이영희)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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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8국립묘지 애들이랑 같이 가기로 했는데 가서 애들이랑 열심히 배울게요. 감사합니다!

    방탄 2021-04-10 21:20:32

  •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좋은 곳으로 가셨길..

    . 2020-05-18 14:16:58

  • 살아가고 공부할수록 고인들이 보여줬던 용기가 얼마나 대단하였는지 깨닫습니다. 무게를 실감하지 못했던 어린 날을 반성하고 선대들의 정신을 기리겠습니다. 진심으로 명복을 빕니다.

    2020-03-28 21:57:46

  • 계엄군한테 구타를 당해서 죽으셨잖아요... 잊지않겠습니다...

    실명 2019-05-31 10:01:03

  • 삼가고인의 명복을 빌며 하늘에선 행복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고근영 2018-05-18 12: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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