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에서 못다 이룬 꿈
천상에서 이루기를…….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75
- 성 명 :노경운
- 출생년도 :1960-07-19
- 사망일자 :1980-05-22
- 이장일자 :1997-06-01
- 직 업 :페인트 가게 점원
- 사망장소 :송암동(추정)
- 사망원인 :총상(흉부 관통상 및 좌하박부 관통상)
- 내 용 :-영원한 꿈이 되어버린 봄나들이
노경운 씨는 어머니와 함께 큰형의 집에서 살았다. 다른 형제들과 나이 차이도 많이 났고 성도 달라, 속으로 받은 상처가 많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노경운 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큰 형 조이조 씨의 페인트 가게에서 일을 도왔는데, 형이 출장 간 사이에 가게를 보거나 어떤 날은 형을 따라 페인트를 칠하러 가기도 했다.
1980년 5월 20일, 어느새 이십 대 청년이 된 노경운 씨는 형의 심부름으로 광주에 가게 됐다. 심부름을 하면 주말 동안 휴가를 준다고 해서 선뜻 광주로 심부름을 다녀오겠다고 한 거였다. 노경운 씨는 일행과 함께 광주에 발을 들였다. 영암에 살고 있던 그들은 광주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했다. 골목마다 군인들이 시퍼런 칼날을 번뜩이며 눈을 부라리고 있었고 사방에서 터지는 최루탄 때문에 질식할 것 같았지만, 그곳을 뜨지 않고 상황을 구경했다. 그러던 21일, 노경운 씨는 계엄군의 무차별 사격에 배와 가슴을 관통당해 죽고 말았다.
노경운 씨와 함께 광주로 갔던 일행이 형 조이조 씨에게 그의 죽음을 알렸고, 조이조 씨는 당장 광주로 향했다. 계엄군이 곳곳에 매복하고 있어 산을 타고 광주로 들어가 상무관에서 노경운 씨의 시체를 찾았다. 사태가 이렇게 심각한 줄 알았다면 동생을 보내지 않았을 거라고, 조이조 씨는 자책했지만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노경운 씨는 29일 합동장례식 후 망월동에 안장돼야 했지만, 어머니의 소원대로 신북 공동묘지에 안장됐다가 1997년 6월에 신묘역으로 이장됐다. (증언자 : 조이조)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