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중

[1-74] 김호중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74
  • 성      명 :김호중
  • 출생년도 :1955-02-24
  • 사망일자 :1980-05-22
  • 이장일자 :1997-05-31
  • 직      업 :노동자(전자회사)
  • 사망장소 :전남대병원
  • 사망원인 :좌전흉부 맹관상
  • 내      용 :-시위 현장 한 번 가보지 않는 빨갱이
    3남2녀 중 차남이었던 김호중 씨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스스로 학비를 마련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형이 근무하던 전자회사에 취직해 일을 시작했으며, 빠르게 적응 했다. 그러다 형 김광중 씨가 일하는 전자회사 사장이 광주에 부품 공장의 공장장으로 김호중 씨를 파견근무 보냈다. 1980년 5월 21일, 공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던 김호중 씨는 공장 문을 일찍 닫았음에도 공장에 남아 있었다. 가게주인과 사촌 동생, 그리고 김호중 씨는 함께 1층 터미널에 앉아 있었는데 바로 그 순간 덜 내려진 셔터 문틈으로 총알이 날아들었다. 김호중 씨는 총에 맞아 쓰러졌고, 병원으로 바로 옮겨졌으나 사망하고 말았다. 5월 21일, 퇴각하던 공수부대가 퇴각로인 학동의 양쪽 건물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했던 것에 김호중 씨가 맞은 것이었다.
    5월 21일, 서울근교로 나가 있던 김광중 씨는 광주에서 소요사태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별일 아니라고 여겼지만, 그날 오후부터 광주에 전화가 끊기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김광중 씨가 출근했을 때 사장이 조심스럽게 김호중 씨의 사망 소식을 알렸다. 김광중 씨는 순천을 통해 광주까지 걸어가 동생의 합동장례식에 참여했다. 장례식이라고 해봤자 파놓은 구덩이에 신원 확인된 시신들을 묻는 과정이 전부였다. (증언자 : 김광중)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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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세이라 2019-05-18 08: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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