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규

[1-73] 김현규

부모 형제의 아픔과 피맺힌 고통을 어찌말로 다할까. 하늘에서나마 어머니와 상봉하소서.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73
  • 성      명 :김현규
  • 출생년도 :1960-01-02
  • 사망일자 :1980-05-22
  • 이장일자 :1997-05-24
  • 직      업 :오토바이 수리공
  • 사망장소 :학동
  • 사망원인 :총상(경부, 흉부, 복부 맹관창)
  • 내      용 :-형제는 시민군이었다
    4남2녀의 둘째로 태어난 김현규 씨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일찍부터 직업을 갖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김현규 씨는 선배의 소개로 1980년 3월, 전라북도 거창에서 광주로 이사해, 불로동에 있는 오토바이 수리상에서 일했다. 5월 20일, 공수부대에 당한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저항하기 시작했다. 저녁 무렵 차량시위가 전개됐고, 이것을 계기로 더 많은 시민이 모여 시위대열을 형성했다. 김현규 씨는 근처에서 일하던 동생 김상규 씨와 함께 시위에 참여했으나, 쏟아지는 최루탄 때문에 동생과 헤어지게 됐다. 김상규 씨는 5월 27일, 도청에서 체포돼 영창으로 끌려갔다. 모진 고문을 당한 뒤, 1981년 9월 석방됐으나 형 김현규 씨는 21일, 오후 늦게 학동 부근에서 총에 맞아 사망하고 말았다.
    김현규 씨의 어머니는 김현규 씨의 시체를 수습해 망월동에 안장했다가 당국의 협박과 회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골 묘지로 이장했다. 후에 석방된 김상규 씨가 형 김현규 씨의 유골을 수습해 신묘역으로 이장했다. (증언자 : 김상규)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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