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평

[1-72] 김재평

아빠! 내가 태어난 지 3일 만에 돌아가셨지만 제 가슴속엔 언제나 아빠가 살아계셔요.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72
  • 성      명 :김재평
  • 출생년도 :1951-03-03
  • 사망일자 :1980-05-21
  • 이장일자 :1997-05-04
  • 직      업 :회사원(완도수협)
  • 사망장소 :화정동(자택)
  • 사망원인 :총상(하악골 맹관총상)
  • 내      용 :-서로에게 단 하나뿐인 사람
    완도 수협에서 일하고 있던 김재평 씨는 2년 만인 1980년 5월 18일, 예쁜 딸을 얻었다. 완도에는 마땅한 병원이 없어, 광주에서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김재평 씨가 아이를 보려면 화정동에 있는 집까지 올라와야 했다. 마침 21일이 휴일이었다. 김재평 씨는 딸아이를 보기 전에 금남로에 들러 친구와 시위에 잠시 참여한 뒤, 저녁에 집에 들어가 딸아이를 보곤 즐거워했다. 다음날 오후, 김재평 씨는 완도로 내려가기 위해 송정리까지 나갔지만, 교통수단이 없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가 샤워를 끝내고 나오자 요란한 총소리가 들렸고, 창을 뚫고 날아들어온 총알은 김재평 씨의 귀밑을 지나 아래턱에 맞췄다.
    김재평 씨가 의식을 잃자, 놀란 가족들은 그를 들쳐 업고 집 근처 병원에 가기 위해 무조건 큰길로 나갔다. 위생병이 와서 김재평 씨 얼굴에 붕대를 감아주더니 군용트럭에 실어 상무대로 옮겼다. 바로 근처에 병원이 있었지만, 군인들이 막무가내로 우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상무관으로 옮기는 도중에 김재평 씨는 죽고 말았다. 군인들은 가족들을 모두 돌려보냈다. 가족들이 다음날 상무관을 방문했을 때 시체가 이곳에 없다고 했다. 가족들은 시체를 찾아 수소문했고, 5월 30일이 지나서야 101 사격장에 김재평 씨가 암매장 됐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가족들은 김재평 씨를 고향 완도 선산에 안장했다가, 후에 망월동으로 이장했다. (증언자 : 고선희)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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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신의 딸이 태어난지 3일밖에 안 되어 헤어지게 되니 많이 힘들었을 것 같고 유가족 분들이 김재평씨가 죽었다고 들었을 때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 지 가늠할 수도 없었을 것 같다. 특히 딸은 아빠를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아빠를 떠나보내야만 했으니까 마음이 정말오 아팠을 것 같다. 그리고 유가족들의 아픔을 더욱 더 같이 아파하고 싶었다. 지금 같이 아파하지 못해드려서 너무 죄송했다.

    한솔 2018-05-25 21:5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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