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수

[1-71] 김재수

당신의 핏방울이 이 땅에 뿌리 되어…….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71
  • 성      명 :김재수
  • 출생년도 :1955-02-27
  • 사망일자 :1980-05-22
  • 이장일자 :1997-05-05
  • 직      업 :미장공
  • 사망장소 :전남대병원
  • 사망원인 :총상(복부관통 총상)
  • 내      용 :-아들의 끝없는 방황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지만, 김재수 씨에게는 사랑하는 아내와 이제 막 돌이 지난 아들이 있었다. 미장일을 하며 가족을 돌보던 김재수 씨는 형님 김재한 씨를 유독 챙겼는데, 같은 건축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형제들보다 우애가 깊었다. 1980년 5월, 광주 곳곳에서 공수부대가 진압봉을 휘둘렀지만, 김재수 씨는 쉬지 않고 일을 나갔다. 20일 아침에도 일을 나가야만 했다. 아내가 말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집을 나선 김재수 씨는 광주역 앞에서 복부에 총상을 입고 21일 오후에 전대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으나, 22일 새벽에 숨지고 말았다.
    형 김재한 씨는 김재수 씨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 다는 연락을 받고 병원을 뒤져 동생을 찾았으나 한발 늦고 말았다. 김재수 씨가 숨을 거둔 다음에야 찾은 것이었다. 김재한 씨는 김재수 씨의 시체를 수습해 입관시켰다. 도청 분수대에서 합동 추모식을 갖은 뒤, 김재수 씨는 망월동 묘역에 안장됐다.
    김재수 씨의 아들 김용화 씨는 마음의 깊은 상처를 입고 방황 중이며, 김재한 씨는 5·18 때문에 상처받은 김용화 씨의 마음을 달래줄 방도가 없어 마음 아파하고 있다. (증언자 : 김재한)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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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아들과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들을 위해 일을 하러 가시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김재수님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이시현 2021-05-17 14:38:27

  • 지켜주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실명 2019-05-31 09:30:26

  • 그저 일을 하시기 위해 나가전 가족을 본게 마지막으로 돌아오지 못 하신 김재수님을 기억하겠습니다. 그 당시의 억울함을 잊지 않겠습니다.

    정민지 2018-05-25 21:55:20

  •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이혜민 2018-05-18 12: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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