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오순

[1-70] 김오순

어머님 참으로 불러보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가 오래오래 참았습니다. 이제는 여러 벗들과 편안하게 쉬십시오.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70
  • 성      명 :김오순
  • 출생년도 :1923-05-11
  • 사망일자 :1980-05-22
  • 이장일자 :1997-05-11
  • 직      업 :주부
  • 사망장소 :산수동(무등산장도로)
  • 사망원인 :차량사고(좌측 두개골 파혈)
  • 내      용 :-역사가 이 여인의 죽음을 기억할 것이다
    김오순 씨는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살았다. 남편이 일정한 수입 없이 집에서 수공업을 하던 터라 둘째 딸이 회사에 다니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다시피 했다. 가난한 살림에도 김오순 씨는 궁핍한 사람들을 돌볼 줄 아는 마음씨 따뜻한 사람이었다. 1980년 5월 18일부터 계엄군의 시위 진압으로 도심으로부터 들려오는 함성과 아우성이 끊이지 않았지만, 김오순 씨가 사는 곳은 산동네라서 그런대로 평온한 날이었다. 김오순 씨는 20일쯤에 시외에 나갔던 셋째 아들을 터미널에서 집으로 직접 데리고 오기도 했다. 그러다 22일, 잠시 마실 나갔다 돌아오던 김오순 씨는 시위대의 차량에 깔려 숨지고 말았다.
    가족들은 너무 당황한 나머지 김오순 씨의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도 못하고, 마을 앞 논에 그녀를 묻었다. 김오순 씨는 광주 상황이 정리된 6월 초에 조선대병원에서 검시를 받은 다음, 망월동 묘역에 안장됐다. 김오순 씨의 죽음으로 상심하던 그녀의 남편은 시름시름 앓다가 1983년에 세상을 떠났고, 작은딸은 타국으로 떠나버렸다. 홀로 남은 큰아들 이상덕 씨는 홀로 남아, 유족회에서 활동하며 비통한 마음을 달래고 있다. (증언자 : 이상덕)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추모글을 남겨주세요

5·18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정신과 역사적 의의를 왜곡하려는 그 어떠한 글이나 정보는 예고없이 삭제하오니 이점 양지하시기 바라며,
경우에 따라서는 법적인 책임도 물을 수 있음을 고지하는 바입니다.

댓글등록
추모글은 100자 이내로 작성해 주세요.현재 0자 (최대 100자)
:
:
추모글 입력

: 아래 새로고침을 클릭해 주세요. 새로고침

  • 시위대의 차량에 깔려 숨지셨다니..ㅠㅠ남편분..충격으로 돌아가셨군요..너무 가슴이 아픕니다..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세이라 2019-11-16 08:09:13

  •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강민서 2018-05-18 11:10:2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