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품안에 고이 잠드소서!
가슴에 맺힌 한을 말로는 다 못하겠습니다.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7
- 성 명 :김중식
- 출생년도 :1938-01-20
- 사망일자 :1980-05-20
- 이장일자 :1997-05-05
- 직 업 :학원 전무
- 사망장소 :도청 추정
- 사망원인 :좌측 흉부 맹관총상
- 내 용 : -남편의 빈 자리
김중식 씨는 윤숙자 씨와 결혼해 아들 둘을 낳았으나 모두 잃고 후에 두 딸을 얻었다. 서울에서 대학까지 나온 김중식 씨는 대학 졸업 후, 고향 장흥에서 양계장을 했는데 몇 번의 실패로 생활이 어려워졌다. 김중식 씨는 광주에 사는 형의 집에 얹어 살며 백운동에서 간이슈퍼 일을 하다가 학원 일자리를 얻었다. 김중식 씨는 학원 일을 하고 아내 윤숙자 씨는 슈퍼 일을 이어갔는데, 그때부터 김중식 씨는 형네 집을 나와 살았다. 그런데 1980년 5월 18일, 그는 어수선한 바깥의 상황에 집에 일찍 귀가했다. 거리에는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고 전방에 있어야 할 군인들이 어째선지 광주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던 것이었다. 그는 혹 전쟁이라도 날까 싶어, 그리고 매일 같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군인들과 대치하는 어린 학생들이 걱정 돼서 틈틈이 시내를 순찰하고 다녔다. 21일에도 그는 어김없이 집을 나섰다. 아내가 가지 말라고 말렸지만 김중식 씨는 자신이 어린 학생도 아닌데 별 일 있겠냐며, 아내를 달랜 후 도청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계엄군이 쏜 총에 허리를 관통 당해 사망했다. 아내 윤숙자 씨는 남편이 오랫동안 들어오지 않자 걱정했지만 홍역을 앓는 두 딸 때문에 직접 찾아 나설 수 없었으며, 20일이 지난 후에야 시아버지의 도움으로 김중식 씨의 사망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증언자 : 윤숙자)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