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두

[1-68] 김영두

사랑하는 내 아들아! 17세 어린나이에 피어보지도 못한 채 민주화를 외치다 갔느냐. 장하다 내 아들아! 부디 좋은 세상에 잠들거라. -엄마가-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68
  • 성      명 :김영두
  • 출생년도 :1963-01-05
  • 사망일자 :1980-05-21
  • 이장일자 :1997-05-22
  • 직      업 :노동자(새시공)
  • 사망장소 :광산군 동곡면 하산교
  • 사망원인 :차량사(내장손상 출혈)
  • 내      용 :-아들의 살 냄새
    1980년 5월 21일 아침에 집에서 나온 김영두 씨는 영암 시내를 돌며 시위에 참여했다. 그러다 광주에서 내려온 시민군의 차를 타고 해남으로 가 총과 쇠파이프 등을 가득 싣고 광주로 가기 위해 영남 신북중학교에 집결했다. 하룻밤을 보낸 뒤, 다음날 광주로 가기 위해 남평 검문소를 지날 때, 매복해 있던 군인들이 총을 갈겼고 김영두 씨가 탄 차는 빗발치는 총알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고꾸라지고 말았다. 김영두 씨는 숨이 멎어가는 순간에, 고향이 영암이라는 말을 남기고 싶었으나 영, 하는 소리만 남기고 죽었다. 사람들은 김영두 씨의 고향을 영산포로 착각하고 영산포 고속버스터미널에 김영두 씨의 시체를 내려놨다. 사흘이 지나도 찾아가는 이가 없자, 나주 경찰서에서 김영두 씨를 후미진 곳에 묻었다.
    김영두 씨의 가족들은 그가 영산포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영암과 광주의 병원 그리고 도청을 헤집고 다녔으나 김영두 씨를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문득, 조선대병원 앞에서 미확인 시신의 인상착의를 발견하게 된 김영두 씨의 누나는 저기에 적힌 사람이 김영두 씨라고 확신했다. 병원의 시신은 붕대로 감겨 있어 확인할 수가 없어, 나주경찰서로 사진을 들고 가 김영두 씨의 시신이 맞는 지, 검시할 때의 사진과 비교해 봤다. 확실히 김영두 씨였다. 가족들은 그를 어머니가 사는 곳 근처의 공동묘지에 묻었다가 후에 신묘역으로 이장했다. (증언자 : 김봉금)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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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늘에서는 행복하시길바라겠습니다.

    김윤서 2019-05-31 09:36:09

  •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세이라 2019-05-21 08:4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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