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연

[1-67] 김병연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67
  • 성      명 :김병연
  • 출생년도 :1962-03-10
  • 사망일자 :1980-05-22
  • 이장일자 :1997-05-06
  • 직      업 :재수생(대입)
  • 사망장소 :광주교도소 부근
  • 사망원인 :총격에 의해 사망
  • 내      용 :-아직도 마르지 않는 어머니의 눈물
    넉넉지 못한 농촌살림에 부모님의 고생을 덜어드리고자 했던 김병연 씨는 사립대학의 진학을 포기하고 학비가 저렴한 국립대학으로 진학하기 위해 재수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김병연 씨가 다니는 학원에 공수부대가 난입해 속절없이 잡혔다가 이튿날 풀려났다. 자취방 주인이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께 상황을 알렸고, 김병연 씨는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 부모님이 계시는 담양으로 내려가려다가 광주교도소 부근 보리밭 길에서 매복해 있던 제3공수여단의 총격을 받고 현장에서 사망했다.
    5월 21일부터 광주로 연결되는 모든 교통수단이 두절 됐고, 전화마저 끊기는 바람에 김병연 씨의 아버지 김봉구 씨는 24일, 직접 아들의 자취방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아들은 자취방에 없었고, 김봉구 씨를 기다리는 건 김병연 씨가 총에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였다. 김봉구 씨는 도청 앞으로가 아들의 시신을 지키다가, 27일 계엄군이 다시 광주를 장악하는 바람에 아들 김병연 씨와 다시 떨어지게 됐다. 며칠이 지나고서야 김병연 씨가 망월동 어딘가에 묻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후엔, 형사들이 김봉구 씨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고 김봉구 씨는 형사들의 눈을 피해, 종종 유족회의에 참여하기도 했다. 공직에 몸을 담고 있어서 다른 유가족들과 시위에 자주 참여하진 못했다. (증언자 : 김봉구)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추모글을 남겨주세요

5·18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정신과 역사적 의의를 왜곡하려는 그 어떠한 글이나 정보는 예고없이 삭제하오니 이점 양지하시기 바라며,
경우에 따라서는 법적인 책임도 물을 수 있음을 고지하는 바입니다.

댓글등록
추모글은 100자 이내로 작성해 주세요.현재 0자 (최대 100자)
:
:
추모글 입력

: 아래 새로고침을 클릭해 주세요. 새로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