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

[1-66] 김동진

당신은 우리 곁에서 말씀 한 마디 남기지 못하시고 나라와 민주화를 위하여 사십 구세의 젊음을 마치셨습니다. 당신의 정신은 자손대대로 빛이 되어 영원하리라. 아버님 고이 잠드소서.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66
  • 성      명 :김동진
  • 출생년도 :1932-09-13
  • 사망일자 :1980-05-21
  • 이장일자 :1997-05-06
  • 직      업 :농업
  • 사망장소 :월산4동(외각도로)
  • 사망원인 :차량사고(내부장기출혈)
  • 내      용 :-아버지의 빈 자리
    4남 1녀의 장남인 김동진 씨의 동생과 젊은 사위는 매일같이 밖으로 나가 시위를 했다. 시위는 점점 격해졌고 둘은 5월 21일,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 총격이 있던 날에도 시위에 참여했다. 총성이 끊이지 않고 울렸고, 시민들은 하나하나 총에 맞아 쓰러졌다. 김동진 씨는 사위와 동생이 걱정됐다. 둘을 찾기 위해 집을 나섰던 김동진 씨는 주월동 외곽도로에서 군트럭을 만났다. 그 트럭은 김동진 씨의 몸 위를 그냥 지나가고 말았다. 그래서 김동진 씨는 아랫도리가 없어졌고, 내장이 파열 된 채로 조선대병원 영안실로 옮겨졌다.
    아랫부분이 없이 병원에 있는 걸 가족들이 찾아냈다. 김동진 씨의 죽음은 서울에서 살던 그의 아들 김수완 씨에게도 전해졌다. 서울에서 있었던 김수완 씨는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났고,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군인들이 밤낮으로 지키고 있다는 뉴스를 들었을 뿐,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아버지는 폭도가 아니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던 김수완 씨는 당장 광주로 달려가고 싶었으나, 모든 교통이 두절 된 바람에 5월 31일에서야 광주로 갈 수 있었다. 광주에 도착하고 나서야 김수완 씨는 광주에서 있었던 일의 진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스무 살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된 김수완 씨는 유리창을 닦고, 신문을 돌리고, 음식점에서 심부름과 배달을 하며 힘든 시기를 넘겼다. 김수완 씨는 결혼도 하고, 꿈속에 나타난 아버지가 점지해 준 아들을 애지중지 키우며 화목한 가정을 이뤘다.
    그럼에도 김수완 씨의 마음은 마냥 좋지만 않다. 죄를 짓고도 떳떳이 살고 있는 그들의 침묵 때문에, 김수완 씨는 마음 아파하고 있다.(증언자 : 김수완)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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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에선 행복하세요 부디....

    손지훈 2019-05-31 09:5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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