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표

[1-64] 홍인표

진정한 민주실현을 위해 한 알에 밀알 된 그 뜨거운 충정의 피로 노력하여 이루어진 민주주의는 영원할 것이고 우리 모두는 기억할지니 이젠 고이 잠들어라.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64
  • 성      명 :홍인표
  • 출생년도 :1960-10-01
  • 사망일자 :1980-05-21
  • 이장일자 :1997-05-11
  • 직      업 :가게점원(화랑)
  • 사망장소 :남동(광천주조장 앞)
  • 사망원인 :총상(좌측 전두골 함몰, 뇌실질파열상)
  • 내      용 :-가시밭을 딛고도 다시 가시밭길인 삶들
    홍인표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 정도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형 홍경표 씨의 화랑일을 돕기 위해 광주로 다시 내려왔다. 홍인표 씨는 평소 미술에 관심이 있었던지라 형의 화랑에 나가 심부름을 하며 미술 학원에 다녔다. 그러다 5월 15일부터 시위에 참여했는데, 21일 시위대가 점점 불어났다. 무장의 필요성을 느낀 시민들은 무장을 하고 계엄군에게 저항했다. 그날 홍인표 씨는 형의 심부름으로 그림 배달을 나갔다가 머리에 총을 맞고 죽었다.
    형 홍경표 씨는 동생의 죽음에 대해 큰 죄책감을 느껴 매일 술을 마셨다. 5월 항쟁을 단순한 지역감정에 편승시키려는 의도적 계획에 말려든 홍경표 씨는 자신의 아내 손영희 씨를 괴롭혔고, 결국 손영희 씨는 반년 정도 쫓겨나 살았다. 그러던 1983년 겨울, 홍경표 씨는 과음으로 인해 몸이, 동생에 죽음을 깊이 슬퍼하는 바람에 마음이 상해 세상을 뜨고 말았다. (증언자 : 손영희)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추모글을 남겨주세요

5·18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정신과 역사적 의의를 왜곡하려는 그 어떠한 글이나 정보는 예고없이 삭제하오니 이점 양지하시기 바라며,
경우에 따라서는 법적인 책임도 물을 수 있음을 고지하는 바입니다.

댓글등록
추모글은 100자 이내로 작성해 주세요.현재 0자 (최대 100자)
:
:
추모글 입력

: 아래 새로고침을 클릭해 주세요. 새로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