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봉

[1-62] 허 봉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62
  • 성      명 :허 봉
  • 출생년도 :1955-08-20
  • 사망일자 :1980-05-27
  • 이장일자 :1997-05-06
  • 직      업 :이발사
  • 사망장소 :도청 부근
  • 사망원인 : 자상(우측 두정골 절상), 타박상(좌측 전두부, 타박열창)
  • 내      용 :-광주는 알고 있다
    1978년 광주 서구 광천동에 박기순을 중심으로 한 들불야학이 설치됐다. 대학생 강학들이 낮에는 직장에 나가 일을 해야 하는 어린 학생들과 때를 놓친 이들의 공부를 돕고, 사회의 부조리와 노동자로서 찾아야 할 꿈에 대해 서로 배우고 가르쳤다. 1980년 5월, 광주항쟁 당시에는 투사회보를 만들어 배포하는 일부터 계엄군의 잔혹성을 시민들에게 알려내는 홍보 일을 주로 맡았다.
    담양군 수북이 고향인 허봉 씨는 1973년 광주에 올라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머니를 비롯한 5남매의 생계는 모두 장남인 허봉 씨의 어깨에 달려 있었다. 허봉 씨는 광주에서 이용기술을 익혀 이발사가 됐다. 그의 열일곱 살의 동생 허오제 씨는 허봉 씨를 쫓아 들불야학에서 국어, 영어 등을 배우는 동시에 노동자로서 인권을 유린당하며 일해야 하는 현실에 눈을 떴다. 유신정권이 재집권하던 1980년, 허봉 씨는 동생 허오제 씨와 함께 5월 15일부터 시위에 참여했다. 그러다 18일, 계엄군이 광주로 내려왔고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이 시작됐다. 허봉 씨는 동생 허오제 씨와 한시도 떨어지지 않다가, 20일 잠시 서로 다른 일 때문에 떨어지게 됐다. 전일 빌딩 앞에서 시위를 계속하던 허봉 씨는 계엄군에 의해 온몸이 멍들고 머리에 대검을 맞은 채 죽고 말았다. 동생 허오제 씨는 형 허봉 씨의 사망 소식을 듣자마자 전일 빌딩 앞으로 갔으나, 시체는 어디에도 없었고 나흘이 지난 24일에서야 허봉 씨의 시체를 조선대 뒷산에서 찾을 수 있었다. 28일 망월동에 허봉 씨의 시신이 안장됐다. (증언자 : 허오제)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추모글을 남겨주세요

5·18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정신과 역사적 의의를 왜곡하려는 그 어떠한 글이나 정보는 예고없이 삭제하오니 이점 양지하시기 바라며,
경우에 따라서는 법적인 책임도 물을 수 있음을 고지하는 바입니다.

댓글등록
추모글은 100자 이내로 작성해 주세요.현재 0자 (최대 100자)
:
:
추모글 입력

: 아래 새로고침을 클릭해 주세요. 새로고침

  • 우리나라를 위해 시위를하는건 죄가아닙니다 감사해요.

    손지훈 2019-05-31 09:55:1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