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광주여.
공수부대가 웬 말인가.
시민이 뭉친 광주 이것만은 알지 못한
전두환 아쉬워라 광주여!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6
- 성 명 :김정선
- 출생년도 :1957-08-16
- 사망일자 :1980-05-21
- 이장일자 :1997-05-13
- 직 업 :방위병
- 사망장소 :도청 부근
- 사망원인 :두부(둔기에 의한 뇌실질손상) 및 전신 타박상
- 내 용 :-어느 방위병의 죽음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지만 장남인 김정선 씨는 중학교를 마치고 작은 회사에 취직해 낮에는 선반공으로 일하고 밤에는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며 학업에 힘쓰던,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그해 5월, 김정선 씨는 스물 셋의 건장한 청년이자 군인이었다. 그는 광천동의 무기고를 지키는 방위병이었는데 제대를 열흘 앞두고 있었다. 1980년 5월 21일, 부처님 오신 날이라서 원래는 일이 없는 날이었지만 비상시국이라 경계근무를 위해 깨끗이 다려진 군복을 입고 출근을 서둘렀다. 또한 이날은 시민들이 자신들을 향한 공수부대의 무차별적인 총격전을 목격하고 난 뒤라, 더 이상 각목이나 쇠파이프로 스스로를 지킬 수 없다고 판단해 무기고를 털기로 결심한 날이기도 했다. 김정선 씨가 근무하던 무기고에도 시민들이 왔고, 김정선 씨는 시민들의 “우리 부모형제가 다 죽게 생겼소. 당신들도 같은 광주 시민이니 도와주시오.” 라는 말에 진정한 의로움과 군인정신이이 무엇인가 떠올리며 시민들과 함께 차에 올랐다. 그 뒤에 실종됐고, 5월 21일 도청부근에서 숨을 거뒀다.
김정선 씨가 실종 되고 열흘이 지나서야 부모는 김정선 씨가 망월동에 안치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망원인은 시체의 상태로 보아 구타로 추정되며, 시체는 망월동에 안치 됐다가 고향인 고흥으로 이장됐었다. 1977년 망월동 신묘역으로 다시 이장됐다. (증언자 : 박귀례)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