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신

[1-55] 조남신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55
  • 성      명 :조남신
  • 출생년도 :1927-01-03
  • 사망일자 :1980-05-21
  • 이장일자 :1997-05-04
  • 직      업 :회사원(광주전화사)
  • 사망장소 :충장로(무등극장 앞)
  • 사망원인 :총상(이골 관통상)
  • 내      용 :-희미해지는 기억
    해남으로 출장을 갔던 조남신 씨는 광주를 다녀온 한 여학생의 입을 통해 광주의 소식을 알고 있었다. 자식들이 걱정 된 조남신 씨는 일을 채 마무리 짓지 않고 광주로 올라왔다. 자식들이 모두 무사하다는 걸 확인 하자,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이 마음에 걸렸다. 조남신 씨는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5월 21일, 회사로 출근했다. 하필 그날은 공수부대들이 시내 빌딩 옥상 곳곳에 배치될 뿐만 아니라, 온갖 중무장 무기를 동원해 평소보다 몇 곱절 지독하게 사격을 퍼붓던 날이었다. 조남신 씨는 사무실에 무사히 도착했으나, 얼마 뒤 밖에서 들리는 총성과 비명소리에 창밖을 내다보며 세상에 이런 일이 있구나, 하며 혀를 끌끌 찼다. 그 순간 창 밖에서 날아든 총알이 조남선 씨의 귀를 지나 턱을 관통한 뒤, 옆에 함께 서있 던 직원 윤성호 씨의 머리까지 관통했다.
    가장이 총에 맞아 죽었음에도 아내 장한수 씨는 남편의 시신을 빠르게 수습하지 못했다. 총알이 어디서 날아들까 두려워, 다음날이 돼서야 남편의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 22일, 조남선 씨의 시체는 학생들에 의해 기독교병원으로 옮겨져 있었다. 장한수 씨가 기독교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조남선 씨의 입관이 끝난 뒤였다. 그러나 장한수 씨는 남편의 얼굴조차 보지 않고 보낼 수 없다며 관을 열어 얼굴을 확인 한 뒤, 깨끗한 새 양복을 새로 입혀 보냈다. 장한수 씨는 남편을 보낸 뒤, 3남 2녀를 기르기 위해 빚을 지고, 파출부 일을 해가며 자식들을 길렀다. 지금이야 자식들은 장성해서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만 장한수 씨는 집 한 칸도 없이 동생네 집에서 사글세를 살아가고 있다. (증언자 : 장한수)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추모글을 남겨주세요

5·18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정신과 역사적 의의를 왜곡하려는 그 어떠한 글이나 정보는 예고없이 삭제하오니 이점 양지하시기 바라며,
경우에 따라서는 법적인 책임도 물을 수 있음을 고지하는 바입니다.

댓글등록
추모글은 100자 이내로 작성해 주세요.현재 0자 (최대 100자)
:
:
추모글 입력

: 아래 새로고침을 클릭해 주세요. 새로고침

  •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때 얼마나 두려우셨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네요.

    봉선화 2018-05-26 07:18:1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