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학근

[1-54] 정학근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54
  • 성      명 :정학근
  • 출생년도 :1950-08-30
  • 사망일자 :1980-05-23
  • 이장일자 :1997-05-11
  • 직      업 :
  • 사망장소 :도청부근
  • 사망원인 :우흉부 맹관총상
  • 내      용 :- 남편 잃고 아이들마저 잃어버린 아내
    광주 대촌동이 고향인 정학근 씨는 경기도 부평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막노동으로 어머니를 모시며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사촌 누나의 소개로 아내 이귀님 씨를 만나 부평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1974년 정학근 씨의 어머니가 돌아가긴 뒤, 1980년 3월에 고향인 광주로 이사했다. 그러던 중 1980년 5월, 광주가 소란스러워졌고, 아내 이귀님 씨는 나주시 영산포에 있는 고모 댁으로 가면서 정학근 씨에게 바로 오라고 연락을 남겼으나 정학근 씨는 그곳으로 가지 않은데다가, 아내에게 어떤 연락도 하지 않았다. 이귀님 씨가 영산포로 간 뒤, 정학근 씨는 누나가 살고 있는 대촌동으로 갔다. 그러다가 시위차량에 올라타 시위에 동참하게 됐고, 5월 21일 도청 앞에서 우측 흉부에 총을 맞아 사망했다.
    아내 이귀님 씨는 20여 일 동안 연락 없는 남편을 기다리다가, 광주로 가는 길이 뚫리자 정학근 씨의 고모 댁으로 찾아갔다. 그때는 이미 정학근 씨가 죽고 초상을 치른 뒤였다.
    이귀님 씨는 아이들 때문에 방을 구하기 쉽지 않아, 아이들이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맡아 길러준다는 교회가 있어 선뜻 맡기고 말았다. 그렇게 3개월 후, 아이들을 영영 잃어버리게 됐다. 아이들은 목포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프랑스로 입양됐다. 몇 번인가 아이들의 소식을 알기 위해 노력했지만 끝내 소식을 알아내지 못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고 서른세 살이 됐을 때, 이귀님 씨는 새 남편을 만났으나 과거일 때문에 고통을 겪어 임신한 채로 집을 나오고 말았다. 지금은 그 때 임신 했던 아이가, 어엿한 여고생으로 커 학교를 잘 다니고 있고, 이귀님 씨는 서울의 조그만 회사에서 주방일을 보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증언자 : 이귀님)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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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생당한 분들을 꼭 기억하고 이 사건을 잊지 않겠습니다.

    신희애 2018-05-18 13:4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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