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용

[1-53] 정찬용

1980년 5월 18일 민중운동 시위항쟁하다 전두환 정권 계엄군에 의해 전사한 용맹무쌍한 투사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53
  • 성      명 :정찬용
  • 출생년도 :1951-05-30
  • 사망일자 :1980-05-21
  • 이장일자 :1997-05-13
  • 직      업 :자영업
  • 사망장소 :도청 앞
  • 사망원인 :총상(우측 두부 맹관 총상)
  • 내      용 :-깨어진 행복
    정찬용 씨는 남의 집에서 전세를 살았지만, 양말이나 내의 등 도매업을 하며 아내와 아들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려나갔다. 1980년 5월 18일, 정찬용 씨는 광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전혀 모른 채 시외로 차를 몰았다. 정찬용 씨가 장사를 마치고 돌아온 19일, 광주에서 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폭행당하거나 죽어가고 있었다. 일을 쉬는 다음날, 정찬용 씨는 아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20일은 교통이 두절 되어 시외로 나가기 위해 걷다가 결국에는 집으로 되돌아 왔다. 21일, 정찬용 씨는 집안의 14대 종손으로서의 책임과 형으로서 동생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책임감에 ‘동생들을 보고 오겠다’며 아내가 차려주는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다가 정오가 되기 전에 되돌아 왔다. 그리고 다시 거리로 나갔다가 그만 총에 맞아 죽고 말았다.
    아내 김금숙 씨는 정찬용 씨가 외출 후 무사히 귀가 했었고, 시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 잘 몰랐으므로 그가 금방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정찬용 씨는 돌아오지 않았고, 다음날 적십자병원에서 발견 됐다. 김금숙 씨는 남편을 영암 선산에 묻은 뒤, 친척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을 하거나, 옷 가게 점원을 하는 등 1년 6개월 밖에 안 된 아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행여 아들이 상처 받을까, 재혼도 마다하며 고된 날들을 보냈다.
    그녀의 헌신으로, 지금 그녀의 아들은 아버지를 꼭 빼닮게 성장했다. (증언자 : 김금숙)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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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절대 잊지못할것이고,절대 잊지않을것입니다. 5.18

    김윤서 2019-05-31 09:56:31

  • 고생하셨습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김준우 2018-05-18 11: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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