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호

[1-52] 전정호

서기 1980년 5월 21일 적십자 병원 안치 당신의 죽음은 헛되지 않고 영광된 것이요. 훗날의 밑거름입니다. 하늘나라에서는 평안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가족-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52
  • 성      명 :전정호
  • 출생년도 :1925-03-15
  • 사망일자 :1980-05-21
  • 이장일자 :1997-05-04
  • 직      업 :회사원
  • 사망장소 :학동
  • 사망원인 :총상(좌흉배부)
  • 내      용 :-부처의 자비는 어디에 있었나
    무뚝뚝한 외모와는 달리 서글서글한 성격의 전정호 씨는 택시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1980년 5월 21일, 전정호 씨는 시위 때문에 차가 파손 될까 염려 된다며 아침 일찍부터 출근했다. 무사히 업무를 마친 전정호 씨는 퇴근 후, 친구들과 술을 한잔 기울인 뒤, 진월동 집으로 향했다. 그러던 중 어디선가 총성이 들렸고 전정호 씨와 친구들은 근처 철문 밑으로 기어들어가 그 집 마당에 섰다. 그때 전정호 씨는 가슴 언저리가 축축한 걸 느꼈고, 자신이 총에 맞았다는 말을 중얼거린 후 쓰러져 죽었다.
    전정호 씨의 소식이 아내 최옥례 씨에게 전해진 것은 다음날 이었다. 최옥례 씨는 전날, 그가 출근하는 게 불안했지만 그는 택시회사에서 사고수습 담당이라, 없으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으므로 특별히 말리지 않았다. 말리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최옥례 씨는 남편의 시신을 수습해 입관을 치렀다. 바로 장지로 떠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합동장례를 치러야 했다. 상무관에서 며칠을 보낸 후, 합동장례를 치룬 뒤에야 전정호 씨를 안장할 수 있었다. 최옥례 씨는 남편이 죽은 뒤에 잘 될 일이 있을까, 했지만은 아들이 조선대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기도 하고, 아들과 딸을 무사히 결혼 시켰다. (증언자 : 최옥례)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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