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진

[1-51] 전영진

어머니 조국이 나를 부릅니다. 민주·정의·자유 위해 앞서 갑니다.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51
  • 성      명 :전영진
  • 출생년도 :1962-12-05
  • 사망일자 :1980-05-21
  • 이장일자 :1997-06-14
  • 직      업 :고등학생(대동고 3학년)
  • 사망장소 :노동청 앞
  • 사망원인 :총상(우측 두부)
  • 내      용 :-맑은 오월, 푸른 십대의 죽음
    1980년 5월 19일, 도교육위원회에서 초중고의 수업을 오전으로 단축하고 20일 하루 동안 휴교할 것을 각 학교에 지시했으나, 휴교는 하루로 끝나지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전영진 씨는 초조해졌다. 혼자서 공부를 하긴 했으나, 친구들이 모두 과외를 받았기 때문이다. 전영진 씨는 어머니에게 친구들이 모두 과외를 받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어머니 김순희 씨는 집안 살림을 조금 아끼면 된다며 전영진 씨가 과외를 하도록 해줬다. 전영진 씨는 들뜬 마음으로 문제집을 사러 나갔으나, 멀리 가지 못하고 금방 집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길에서 마주친 계엄군이 다짜고짜 전영진 씨를 붙들고 등을 때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놀라 마음에 집으로 들어가긴 했으나, 분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전영진 씨는 시위에 나가고 싶다고 어머니에게 말했으나, 어머니의 완강한 반대로 20일 하루를 집에서 보냈다. 다음날 21일, 일찍 밥을 먹은 전영진 씨는 어머니가 설거지를 하는 틈을 타 집 밖으로 나갔다. 그는 당장 도청으로 향했다가 계엄군이 쏜 총에 의해 사망했다.
    뒤늦게 아들을 찾아 나섰던 어머니 김순희 씨와 아버지 전계량 씨는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듣고, 전대병원과 적십자 병원으로 향했으나 그곳에 전영진 씨는 없었다. 다음날이 돼서야 전영진 씨가 기독교병원 영안실에 있다는 연락을 받았고, 전계량 씨가 혼자 아들 전영진 씨의 시체를 입관 시켰다. 김순희 씨는 떨리는 마음 때문에 아들이 안장 되는 것도 보지 못했으나, 아들의 죽음을 규명하고 광주시민의 명예를 찾기 위한 투쟁에 앞장섰다. 전계량 씨는 유족회 회장직을 맡아 김순희 씨를 도왔다. (증언자 : 김순희)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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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랑 이름이 같으시네요ㅠㅠ ㅠㅠㅠㅠㅠ어뜨케 이럴수가

    전영진 2021-03-31 11:30:20

  • 5·18은 6·25 이후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가슴 아픈 사건이었지만 이 땅에 민주주의가 굳건히 뿌리내리는 전기가 됐다"며 "5·18 정신이 6월항쟁으로 이어지고 촛불혁명으로 부활하면서 민주·인권·평화의 가치가 국민의 삶속에 뿌리내렸다. 부디 편히 잠드소서.

    박재오 2020-05-18 11:32:30

  • 자신의 가족을 위해, 그리고 정의,자유를 위해서 시위를 하신것이 대단히 느끼며, 우리들의 영웅입니다

    김재혁 2018-05-18 13:4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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