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방환

[1-50] 장방환

오호라 애석 도다! 1980년 5월 21일 전남대학 교정에서 군사반란군 흉탄에 서거 향년 58세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50
  • 성      명 :장방환
  • 출생년도 :1922-03-13
  • 사망일자 :1980-05-21
  • 이장일자 :1997-05-04
  • 직      업 :유통업
  • 사망장소 :전남대 부근
  • 사망원인 :뇌진탕(복부 및 후두부 열창)
  • 내      용 :-걷히지 않는 남편의 그늘
    순천에서 중간 유통업 사업을 하고 있던 장방환 씨는 광주에서 대학생이면 무작정 잡아간다고 하기에, 자식들 단속을 위해 전남대 근처의 집으로 향했다. 사실 그의 집에는 대학생들로 북적거렸는데, 아내 박연순 씨가 하숙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방환 씨는 집에 들러 주의를 준 뒤, 점심을 먹고 잠시 집을 나섰다. 그리고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박연순 씨는 남편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가 사방에서 울리는 총소리에 놀라 집으로 돌아왔다. 이틀을 꼬박 남편 장방환 씨를 기다렸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박연순 씨는 장방환 씨를 찾아 헤매던 중, 그의 옷가지를 발견했으나 자식들이 아버지의 복수를 하겠다고 나설까 봐 집에 옷가지를 가지고 들어가지 못했다. 대신 아버지가 들어오지 않으니 함께 찾아보자며 둘째와 막내, 그리고 박연순 씨 셋이서 자전거를 타고 광주시내의 모든 병원을 뒤졌으나 어디에도 장방환 씨가 없었다. 6월 초, 교도소에서 발견 된 8구의 시체 중 하나가 장방환 씨와 닮았다는 연락을 받고 가봤더니 그가 맞았다. 겨우겨우 시체를 인계받았으나 박연순 씨는 남편이 언제, 어디서 죽임을 당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조카의 권유로 망월동에 장방환 씨를 안장하고, 1985년 최루탄 냄새가 끊이지 않는 대학가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조금만 빨리 이사를 했더라면 이런 비극을 피할 수 있었을 까, 하고 박연순 씨는 종종 생각한다. (증언자 : 박연순)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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