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당신의 숭고한 뜻은
우리에게 커다란 사랑으로 남아 바른
삶의 지표가 되었습니다.
훌훌 털어버리시고
부디 편히 잠드소서…….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49
- 성 명 :임은택
- 출생년도 :1945-04-10
- 사망일자 :1980-05-21
- 이장일자 :1997-05-11
- 직 업 :자영업
- 사망장소 :광주교도소 옆 고속도로
- 사망원인 :총상(대퇴부 관통, 우하퇴부 관통), 타박상(우견갑부 및 견갑골 골절)
- 내 용 :-당신이 없어 너무 힘들었어요
1980년 5월 21일, 임은택 씨는 광주에서 군인들이 빠져나갔다는 소식을 듣고 광주로 수금하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광주에 볼일이 있던 고귀석 씨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차에 올랐다. 넷이 탄 차가 광주에 가까워질 무렵, 멀리서 총소리가 들렸고 놀란 임은택 씨와 일행들은 다시 차를 돌렸으나 곧 군인들에게 따라잡히고 말았다. 군인들이 쏜 총에 맞은 임은택 씨와 고귀석 씨는 간신히 숨을 내쉬고 있었다. 임은택 씨와 고귀석 씨를 끌고 도망칠 여력이 없던 나머지 사람들은 우선 달아났다. 군인들이 총에 맞은 둘을 발견하면 치료해 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었지만, 군인들은 임은택 씨와 고귀석 씨를 발견하고 치료는커녕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 시각,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절에 갔던 아내 최정희 씨가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이 죽은 것도 모른 채 집에서 남편을 기다렸으나 밤이 늦도록 임은택 씨가 오지 않았다. 최정희 씨는 오지 않는 남편을 찾아 광주 구석구석을 뒤졌으나, 어디에서도 남편을 찾을 수 없었다. 어디에서도 발견 되지 않으니, 분명 살아있을 거라고 굳건히 믿었다. 그러나 5월 31일, 암매장 된 시체를 발굴하던 도중 임은택 씨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최정희 씨의 믿음은 깨지고 말았다. 최정희 씨는 남편의 시체를 확인 한 뒤, 선산이 있는 창평에 임인택 씨를 안장했다가 1997년 신묘역으로 이장했다. 가족들이 모두 반대했지만 그녀는 남편이 다른 영령들과 함께 그날의 고통을 나눌 수 있게 해주고 싶었기에, 남편을 망월동에 묻었다. (증언자 : 최정희)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