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춘

[1-48] 임수춘

민중의 주인 되는 그날 위해 그의 넋이 패역한 세대에 민주 혼으로 승화되어 이 나라 굽어 살피게 하소서. 고이 잠드소서!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48
  • 성      명 :임수춘
  • 출생년도 :1942-01-02
  • 사망일자 :1980-05-20
  • 이장일자 :1997-05-04
  • 직      업 :자영업(청과물가게)
  • 사망장소 :학동 자택 부근
  • 사망원인 :타박상(두개골 골절)
  • 내      용 :-가해자 없는 피해자
    쾌활한 성격의 임수춘 씨는 부양해야 할 가족이 많았다. 우선 그의 아버지와 아내, 그리고 세 형제까지, 자신을 제외하면 모두 다섯 명이었다. 임수춘 씨는 과일과 부식을 함께 판매하면서 풍족하진 않지만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충분히 꾸려나갔다. 그러던 1980년 5월 18일, 광주사태로 인해 가정의 행복이 깨지게 됐다. 광주에 계엄군이 들어 닥쳐 사람들을 죽이고 다닌다는 소식을 들은 임수춘 씨는 18일과 19일, 바깥출입을 일절 하지 않았다. 밥을 빨리 먹은 임수춘 씨는 가게 앞의 오토바이를 들여놓기 위해 잠시 대문 밖으로 나섰다. 지프차 한 대가 임수춘 씨에게 다가왔고, 그 안에 타고 있던 군인이 몽둥이로 임수춘 씨의 머리를 친 뒤에 사라졌다.
    윤삼례 씨와 가족들은 요란한 소리에 놀라 대문 밖으로 뛰어 나왔을 땐, 이미 남편 임수춘 씨가 쓰러진 뒤였다. 동네 사람들의 도움으로 임수춘 씨를 리어카에 싣고, 곧바로 전대병원으로 향했다. 윤삼례 씨와 동네 사람들의 빠른 대처에도 불구하고, 임수춘 씨는 영영 의식을 찾지 못했다. 그의 시체는 21일 영안실로 옮겨 진 뒤, 도청으로, 상무관으로, 다시 분수대로 나와 시민들의 추모식에 함께 했고, 다시 상무관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29일 합동장례식을 치른 후, 망월동 묘역에 안장됐다.
    허망하게 남편을 잃은 윤삼례 씨는 생계가 중요했음에도 유족회 일에 더 열중했다. 임수춘 씨의 죽음에 대한 사죄를 듣기 위해 노력했으나 아무도 윤삼례 씨에게 사죄 하지 않았고, 그녀를 감시하고 괴롭혔다. 아직도 감추어진 많은 진실들이 있음에도 밝혀지지 않는 세상이, 잊으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 때문에 그녀는 속상하다. (증언자 : 윤삼례)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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