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연

[1-46] 이종연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46
  • 성      명 :이종연
  • 출생년도 :1963-02-23
  • 사망일자 :1980-05-21
  • 이장일자 :1997-05-13
  • 직      업 :학생(재수생)
  • 사망장소 :나주시 왕곡면 장산리 국도
  • 사망원인 :차량사(전두골, 치두골 함몰골절)
  • 내      용 :-가슴에 묻은 자식
    나주에 사는 이종연 씨는 광주로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재수 중이었다. 그러나 1980년 5월, 광주항쟁이 일어난 뒤로 이종연 씨는 친구들과 광주까지 가서 시위에 참여하느라 집에 들어오지 않곤 했다. 그러던 5월 21일, 광주에서 있는 일을 나주에 알리기 위한 시위차량을 타고 이종연 씨는 집에 잠시 들렸다. 손에 총이 들려 있었다. 아버지 이호균 씨는 이종연 씨를 호통쳤고, 아버지의 호통에 놀란 이종연 씨는 마을 어귀에 총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듯했으나 결국 다시 시위차량에 몸을 실었다. 시위차량은 나주경찰서에서 무기를 획득한 뒤, 다시 광주로 향했다. 그러다 효천쯤에서 산에 매복하고 있던 군인들이 이종연 씨가 타고 있는 차에 총격을 가했고, 차량은 급히 나주 왕곡면 국도로 돌아섰다. 트럭의 뒤에 타고 있던 이종연 씨는 모퉁이를 도는 차의 속도를 이기지 못했다. 결국 차에서 굴러떨어져 숨지고 말았다.
    이종연 씨의 아버지 이호균 씨와 청년 몇 명이 그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지만, 이미 죽은 뒤라 손 쓸 도리가 없었다. 아버지 이호균 씨는 방금까지 점심을 먹고 있던 아들이 반나절 만에 송장이 됐다는 사실에 기가 막혀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청년들은 시체가 있으니 군인들이 올 거라며 대피하라고 했고, 얼떨결에 산으로 대피하던 이호균 씨와 마을 사람들은 문득, 이건 아니다 싶어 다시 집으로 돌아가 이종연 씨의 곁을 지켰다. 날이 밝자마자 이호균 씨는 아들 이종연 씨를 공판장 옆 저수지가 있는 공동묘지에 묻었다. (증언자 : 이호균)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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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도 이분들이있기에 저희가 지금 편히살아갑니다 감사합니다

    손지훈 2019-05-31 09:3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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