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술

[1-45] 이재술

이승에서 못다 한일 저승에서 이루시고 편히 잠드소서!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45
  • 성      명 :이재술
  • 출생년도 :1937-07-20
  • 사망일자 :1980-05-21
  • 이장일자 :1997-01-02
  • 직      업 :무직
  • 사망장소 :도청 앞
  • 사망원인 :총상(견갑부 맹관 총상), 타박상(전흉부다발성)
  • 내      용 :-남편의 빈 자리
    1980년 5월 21일, 이재술 씨는 도청 앞에서 협상결과를 기다리던 시위대 틈에 섞여 있었다. 최루탄이 터지고 돌멩이가 날아가는 중에 장갑차와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총성이 연거푸 올렸고 시민들은 놀라 허둥지둥 거렸다. 그때, 이재술 씨도 총에 맞았다.
    이재술 씨와 함께 도청 앞에 갔던 처남이 그가 피 흘리는 것을 보았으나, 이재술 씨가 어깨에 총을 맞았다고 착각하고 먼저 몸을 숨겼다. 이재술 씨의 아내 윤금순 씨는 동생으로부터 남편 이재술 씨가 어깨에 총을 맞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언니와 둘이 적십자병원에 갔다가 전남대병원에 갔다. 전남대병원에 이재술 씨가 있었다. 시멘트 바닥에 널브러져, 신발도 신지 않고 있었다. 이재술 씨는 29일, 합동장례식 뒤에 망월동에 안장됐다. 든든한 남편의 죽음 뒤, 윤금순 씨는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며 아이들을 키웠다.
    윤금순 씨는 이재술 씨가 있었다면, 더 좋은 엄마, 더 좋은 가정을 꾸릴 수 있었을 거라며 안타까워한다. 서른셋에 혼자가 돼, 이제는 예순을 바라보는 윤금순 씨에게 남편의 빈자리는 아직도 크다. (증언자 : 윤금순)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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