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자

[1-44] 이성자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44
  • 성      명 :이성자
  • 출생년도 :1965-01-30
  • 사망일자 :1980-05-21
  • 이장일자 :1997-05-06
  • 직      업 :가사
  • 사망장소 :노동청 옆
  • 사망원인 :총상(우전흉부 관통)
  • 내      용 :-고아원에서 데려온 딸
    아이를 하나 놓는 게 소원이었던 이재현, 정석심 부부는 늦게 손자 같은 아이가 생길 거라는 점쟁이의 말에 고아원에서 여섯 살 난 이성자 씨를 입양했다. 이성자 씨는 밝고 유순한 성격으로 집안의 분위기를 활기차게 바꿔 놨다. 이성자 씨가 초등학교를 졸업 하던 해에는 점쟁이의 말대로 손자 같은 아이를 낳았다. 이성자 씨는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을 위해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어린 동생을 돌봤다. 사이가 좋아 부모님은 안심했고, 이성자 씨를 복덩이로 여겼다. 1980년 5월 20일, 군인들이 산발적으로 시위를 벌이는 학생과 시민들을 곤봉으로 내리친 뒤 어딘가로 끌고 갔다. 이를 본 아버지 이재현 씨를 아이들을 바깥으로 내보내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성자 씨를 나가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21일, 이성자 씨는 학원에 가야 한다며, 부모님이 한눈을 판 사이에 집을 나섰다가 총에 맞았다.
    마을 사람들에게 이성자 씨가 총에 맞았다는 소식을 들은 어머니 정석심 씨는 거짓말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밤새 돌아오지 않는 이성자 씨가 어쩌면 총에 맞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정석심 씨와 이재현 씨는 날이 밝자마자 조선대병원, 전남대병원 등 부근의 개인병원까지 뒤졌지만, 어디에도 이성자 씨는 보이지 않았다. 이튿날 오후에서야 기독교병원에 가게 됐는데, 그곳에서 이성자 씨를 찾을 수 있었다. 이재현 씨는 충격으로 쓰러져 이성자 씨가 망월동에 묻히는 것도 보지 못했다. 정석심 씨는 마음을 굳게 먹고 딸을 위해 유족 시위에 참여했다. (증언자 : 이재현)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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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이상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아영 2021-05-18 12:43:21

  • 학교 과제로 둘러보던 중,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중학생으로 광주 민주화 운동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공부해 다시는 이 땅에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국민으로써 열심히 살겠습니다. 지금 계신 곳은 따뜻하실까요. 부디 행복하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은지 2019-11-12 22: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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