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

[1-42] 이경호

슬픈 시대 현실에 굴하지 않은 당신의 죽음은 이 땅에 자유와 민주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고이 잠드소서.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42
  • 성      명 :이경호
  • 출생년도 :1960-06-03
  • 사망일자 :1980-05-21
  • 이장일자 :1997-05-06
  • 직      업 :무직
  • 사망장소 :도청 앞
  • 사망원인 :총상(흉부 관통)
  • 내      용 :-드러나야 할 진실
    이경호 씨는 곁에 있는 것조차 모를 만큼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이야기 할 때는 분명히 했다.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은 분명히 거절할 줄 알고 옳다고 생각되는 일은 강하게 밀고 나갔다. 그래서 그해 5월, 이경호 씨는 날마다 시위에 참여하는 듯했다. 매일 저녁 늦게야 들어와서는 데모 구경 갔다 왔다고 가볍게 이야기 하곤 했다. 누나와 매형에게 걱정을 끼칠까 봐 시내에서 보고 들은 계엄군의 만행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누나 이성자 씨는 21일, 나가지 말라고 이경호 씨를 붙잡았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서더니, 그 뒤로 소식이 없었다.
    누나 이성자 씨는 사라진 동생을 찾아 종합병원을 뒤졌다. 아무리 봐도 동생이 없어 망연히 사흘을 보냈다. 그때, 옆집 아주머니가 이경호 씨와 비슷한 시신을 전남대병원에서 봤다고 말했다. 이성자 씨는 전대병원으로 달려가 시체를 하나하나 살피다가 이경호 씨를 발견했다. 얼굴이 퉁퉁 부어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찢겨진 옷이 틀림없이 이경호 씨의 옷이었다. 가슴에 작은 총탄이 하나 있을 뿐인데, 이경호 씨는 피로 범벅 돼 있었다. 이경호 씨는 25일 상무관에 안치 됐다가 29일 안장 됐다. 이후에 동생이 죽은 이유에 대해서 듣고 싶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고 있는 현실에 누나 이성자 씨는 마음이 아프다. (증언자 : 이성자)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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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의 광주를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재광 2018-05-18 13: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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