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식

[1-40] 윤재식

당신이 흘린 피 방울방울 열매 맺어 이 땅에 민주화로 활짝 꽃 피우리라.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40
  • 성      명 :윤재식
  • 출생년도 :1950-01-06
  • 사망일자 :1980-05-21
  • 이장일자 :1997-05-04
  • 직      업 :자영업(식품도매상)
  • 사망장소 :도청 앞
  • 사망원인 :타박상(둔기에 의한 두정부 함몰골절), 총상(우배흉부 맹관상)
  • 내      용 :-5·18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
    윤재식 씨는 어여쁜 아내와 귀여운 두 아들을 둔 평범한 가장이었다. 전남대학교 근처에 살던 윤재식 씨는 양동시장 부근에서 식품도매업을 하고 있었다. 1980년 5월 18일, 그날 그는 업무 때문에 다방에서 사람을 만나다가 군인들에게 호되게 당했다. 그날 이후 윤재식 씨는 바깥에 나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족들과 집에만 있었다. 그런데 21일 오전, 가게에서 일하는 종업원이 찾아와 난리가 났다고 알렸다. 윤재식 씨는 밀린 수금도 좀 하고, 비상식량이라도 좀 사올 요량으로 가게 종업원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밖으로 나갔다가 날아드는 총탄을 피하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윤재식 씨가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던 아내 배용희 씨는 남편을 따라 밖에 나갔다가, 불안해져서 동생네 두 아들과 함께 동생네 집에 가 있었다. 남편 윤재식 씨를 위해 메모를 남겨 뒀는데도 남편은 올 생각이 없었다. 배용희 씨는 덜컥 무서운 생각이 들어 온갖 종합병원에 전화를 걸었지만 어디에도 남편이 없었다. 그러다 적십자병원에서 직접 와서 확인해보라는 말을 듣고 직감적으로 남편이 거기 있을 거라고 생각해, 아버지와 함께 병원에 가 남편 윤재식 씨의 시체를 찾았다. 입관식이 끝난 후에, 도청 앞에서 단체 추도식을 갖고 망월동에 안장됐다.
    배용희 씨는 아버지 없이도 훌륭히 자란 두 아들이 자랑스럽다. 광주에서는 형사들의 감시가 심해 서울로 이사해 동생의 가게에서 일을 도왔다. 부도 때문에 다시 광주에 내려와 무등도서관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거나, 북구청에서 파견근무를 하기도 했다. 86년에는 세무과로 옮겨 지금껏 열심히 일하며 두 아들을 뒷바라지 했다. 배용희 씨는 이렇게 바쁘게 살면서도 5·18의 참된 의미와 진실을 입막음 하는 현실에 마음아파 하고 있다. (증언자 : 배용희)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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