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4
- 성 명 :김인태
- 출생년도 :1933-01-02
- 사망일자 :1980-05-20
- 이장일자 :1997-05-09
- 직 업 :농업
- 사망장소 :전남대 부근에서 부상당한 후 광주교도소 인근 야산에서 발견
- 사망원인 :타박상(우측 두개골 압박골절)
- 내 용 :-여전히 하나밖에 없는 남편
해남에서 농사를 짓던 김인태 씨가 광주와 맺고 있는 연이라고는 큰아들이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하숙을 하고 있다는 것 밖에 없었다. 김인태 씨는 손이 귀한 집의 독자로 태어나 심복례 씨와 결혼해 아들 넷과 딸 둘을 낳아 농사를 지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김인태 씨의 큰 아들이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1980년 2월에 졸업했으나 하숙비를 해결하지 못해 집으로 가지 못하고 있었다. 1980년 5월 19일이 돼서야 그동안 농사일로 바빠 해결하지 못했던 큰 아들의 밀린 하숙비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집에 남겨두고 광주로 향했다. 집을 나선 김인태 씨는 열흘이 넘게 소식이 없었다. 심복례 씨는 별일 없을 거라는 믿음으로 남편을 기다렸다. 5월 말께, 심복례 씨는 장을 보기 위해 시내에 나갔다가 우연히 만난 면사무소 직원에게 김인태 씨의 사망통지서가 면사무소에 도착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김인태 씨가 사망에 이른 경위는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으며 심지어는 그가 연행되고 바로 숨을 거뒀는지, 구타에 시달리다가 버려지기 직전에 숨을 거뒀는지 조차 알 수 없다. 단지 유골의 상태와 사망추정시각으로 추측해 볼 때, 계엄군이 교도소로 퇴각하는 동안 사망했으며, 극심한 구타가 사망의 원인이라는 점만 확실하게 알 수 있을 뿐이다. (증언자 : 심복례)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