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호

[1-39] 윤성호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11장 25·26절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39
  • 성      명 :윤성호
  • 출생년도 :1953-01-21
  • 사망일자 :1980-05-27
  • 이장일자 :1997-05-12
  • 직      업 :회사원(광주전화사)
  • 사망장소 :충장로(무등극장 앞)
  • 사망원인 :총상(두부)
  • 내      용 :-자전거 탄 아들의 뒷모습
    복잡한 가정사로 인해 고아원에서 자란 윤성호 씨는 제대 후 고등학교 때 배운 기술로 광주통신공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했던 윤성호 씨는 자신의 불우한 운명을 탓하지 않고, 교회에 나가 기도하며 자신의 삶을 다독였고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찾고 의지했다. 1980년 5월 그때도 윤성호 씨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직장에 나갔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는 어머니는 매번 쉬라고 만류했지만, 아들은 쉬이 말을 듣지 않았다. 살고 죽는 것 모두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니 아무 일 없을 거라며, 어머니를 다독였다. 5월 21일, 그날도 만류하는 어머니를 뿌리치고 윤성호 씨는 평소처럼 일을 나섰다. 군인들을 겨우 피해 출근했지만, 사무실 밖에서 총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상사 조남신 씨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밖의 상황이 궁금했던 윤성호 씨는 상사 옆에서 창문 밖을 내다봤고, 그 순간 조남신 씨가 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연이어 윤성호 씨도 금세 쓰러졌다. 도청 수협 옥상에서 날아든 총알이 조남신 씨의 머리를 관통한 뒤 윤성호 씨의 머리에 박혔던 것이다.
    어머니 박경행 씨는 퇴근 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다,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직원들은 말하기를 꺼렸으나 박경행 씨가 다그치자 윤성호 씨가 총에 맞아 죽었다고 이야기 했다. 박경행 씨는 당장, 기독교병원으로 갔지만 이미 윤성호 씨는 전대병원을 거쳐 건너편 대우병원으로 이송 된 뒤였다. 박경행 씨가 아들 윤성호 씨를 따라 대우병원으로 갔을 때, 그는 기적적으로 수술을 마치고 살아나는 듯 보였으나 사망하고 말았다. (증언자 : 박경행)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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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술을 마치고 살아나셨다면 참 다행이셨을텐데 살아나지 못하셔서 정말 안타깝고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계엄군에게 맞선 분들이 참 대단하신 것 같고 편하게 쉬셨으면 좋겠습니다.

    윤성채 2021-05-17 14:40:45

  • 수술을 마치고 살아날 줄 알았는데 사망하였다니 가족분들이 너무 슬프셨을 것 같다. 잊지 않겠습니다.

    최수현 2019-06-04 13:46:28

  • 이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세상이 만들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손지훈 2019-05-31 09:4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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