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태

[1-36] 안병태

사랑하는 아우야! 네 죽음이 이 나라 역사를 다시 여는 밑거름이 되었구나. 너의 넋이 이 세상 사람들의 바른 삶으로 되살아 나고 있음이 보인다.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36
  • 성      명 :안병태
  • 출생년도 :1956-01-02
  • 사망일자 :1980-05-21
  • 이장일자 :1997-05-23
  • 직      업 :목공
  • 사망장소 :금남로(광주은행 사거리)
  • 사망원인 :총상(전두부 관통)
  • 내      용 :-어머니로 살아야 하는 이유
    목공소에서 일하는 안병태 씨는 계엄군의 만행이 심해지면서 직장에 나가지 못하게 됐다. 그때 안병태 씨의 친구 권학봉 씨가 찾아와 광주에서 벌어지는 일을 원통해했지만, 안병태 씨의 아버지가 호통치는 바람에 둘은 꼼짝도 못 하고 집에만 있었다. 그러다가 전남지역 학생총연맹 이름으로 21일 오후 2시 도청 앞에서 도민 궐기대회를 하자는 전단이 시내에 뿌려진 걸 안병태 씨와 권학봉 씨는 보고 말았다. 더 이상 참고 있을 수 없던 안병태 씨는 아버지의 호통에도 불구하고 집을 나섰다. 멀리 도청 앞 분수대가 보였고, 그곳에 모여있는 수십만의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안병태 씨와 권학봉 씨가 발걸음을 옮기던 그때, 계엄군의 발포명령이 떨어졌고, 안병태 씨는 그 자리에 푹 쓰러졌다. 그의 이마에 총알이 박혀 있었다.
    권학봉 씨는 안병태 씨의 형, 안병권 씨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죽음을 전했고, 형 안병권 씨는 병원에 가서 동생의 죽음을 확인했다. 다음날 부모님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을 때, 안병태 씨의 시체는 이미 도청으로 옮겨진 후였다. 이 사실을 모르고 오열하다가, 뒤늦게 도청으로 향했지만 이미 입관이 끝난 뒤였다. 이름과 주소를 잘못 기제 한 탓에 관을 하나하나 열어 찾아야 했다. 이후에 안병태 씨는 망월동에 안장 됐다. 4년 뒤, 이장을 하지 않으면 무사하지 못할 거라는 형사들의 협박을 받고 승주에 있는 공동묘지로 이장됐다가, 97년 신묘역으로 옮겨졌다. (증언자 : 안병권)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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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수한다는 거짓 발표를 하여 시민들을 속여 무자비한 발포로 인한 죽음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5.18 꼭 기억하겠습니다.

    효은 2021-05-17 11:5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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