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보 !
뼈아픈 17년을 삭히고 이제 한 많은
세월을 잊읍시다.
아버지 서글픈 세월 뒤로 한 채 민주의
횃불이 밝아옵니다.
편히 쉬세요.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34
- 성 명 :안두환
- 출생년도 :1935-04-25
- 사망일자 :1980-05-21
- 이장일자 :1997-05-04
- 직 업 :보일러공
- 사망장소 :전남대학교
- 사망원인 :타박상(우두 정부 타박 열창, 뇌진탕)
- 내 용 :-피 묻은 허리띠 하나
자상한 아버지였던 안두환 씨는 1980년 5월 21일, 아내 김옥자 씨와 함께 집 옥상에 올라 사태를 보고 있었다. 전남대학교 정문에서 시민과 공수부대원 사이에 한 차례 접전이 벌어져, 최루탄 연기가 자욱했고 계엄군은 총부리로 구경하는 사람들을 금방 쏘기라도 할 것처럼 겨냥하고 있었다. 놀란 안두환 씨는 김옥자 씨를 데리고 아래로 내려가 대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안두환 씨가 쓰라린 눈과 얼굴을 씻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갔을 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대문이 열렸다. 세 명의 계엄군이었다. 그들은 안두환 씨를 화장실에서 끌어낸 뒤 진압봉으로 내리친 후 어딘가로 끌고 갔다.
김옥자 씨는 하루 종일 남편을 찾아, 상무대, 31사단, 국군통합병원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어디에도 그녀의 남편 안두환 씨는 없었다. 29일, 어떤 군인의 도움을 받아 다음날 30대 정도의 시신이 있다는 정보를 얻고 조대병원 영안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그녀의 남편 안두환 씨가 있었다. 시체는 시퍼렇게 멍이 들고, 으스러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틀림없이 안두환 씨였다. 김옥자 씨는 망월묘역에 안두환 씨를 안장했다. 남편이 없어 생계가 어려웠지만, 김옥자 씨는 꿋꿋이 자식들을 키워냈다. (증언자 : 김옥자)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