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동선

[1-33] 심동선

민주화를 외치다. 계엄군 총탄에 장렬히 사망하다. 고이 잠드소서……. -동생 월용·양길-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33
  • 성      명 :심동선
  • 출생년도 :1950-02-18
  • 사망일자 :1980-05-21
  • 이장일자 :1997-05-06
  • 직      업 :다방 종업원
  • 사망장소 :대의동 진다방 3층
  • 사망원인 :총상(상악골)
  • 내      용 :- 하늘에 그려보는 얼굴
    시골에서 태어난 심동선 씨는 3남 5녀 중 장남이었다. 어려서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1980년에는 광주 한 다방의 지배인으로 일했다. 광주사태 이후 영업이 어려워져 아무도 출근하지 않았지만, 심동선 씨는 혹여 공수부대가 가게에 무슨 문제라도 생길까 걱정 돼, 매일 출근해 가게를 지켰다.
    5월 21일, 아침부터 금남로로 모여든 수십만 명의 시민들은 계엄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계엄군은 금방이라도 총을 쏠듯이 경계하는 자세였지만 시민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얼마뒤 무차별 적인 총격이 시작 됐고, 총소리에 놀란 심동선 씨는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심동선 씨가 놀란 눈으로 주변을 살피던 그때,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와 그의 머리에 박혔다.
    심동선 씨의 시체를 상무관으로 옮기고 입관을 마친 뒤에, 가족들이 도착했다. 어머니가 아들의 시신과 마주 했을 때는 이미 시체의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후였다. 가족들은 슬픔을 뒤로하고 장성으로 돌아갔다.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끝이 아니었다. 심동선 씨를 죽인 일당이 장성까지 쫓아와 이장을 할 것을 강요했다. 결국 심동선 씨의 아버지는 이장을 결심하고, 그를 장성으로 이장했다. 후에 신묘역으로 이장 되지만, 동생 심월용 씨는 형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심월용 씨는 1980년, 스페인 원양어선을 타고 해외로 나가 83년 귀국했기 때문에 뒤늦게야 형의 죽음을 알게 된 것 이였다. 형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분노를, 그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증언자 : 심월용)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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