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배

[1-30] 박인배

못다 핀 꽃 한 송이 너의 숭고한 넋을 기리는 날이 왔건만 인배야! 무참히 짓밟힌 너의 꿈 저 세상에서라도 꼭 이루어라. 1997년 5월 4일

  • 안장장소 :국립5·18민주묘지
  • 묘역구분 :1묘역
  • 묘역번호 :1-30
  • 성      명 :박인배
  • 출생년도 :1962-09-20
  • 사망일자 :1980-05-21
  • 이장일자 :1997-06-14
  • 직      업 :노동자(자개공)
  • 사망장소 :금남로 한일은행 사거리
  • 사망원인 :총상(좌경부)
  • 내      용 :-꽃아, 꽃아 눈물꽃아!
    파출부와 행상 일을 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란 박인배 씨는 어머니의 짐을 덜어드리기 위해 중학교를 중퇴하고 자개기술을 배웠다. 서울에 올라가 자개기술을 배운 박인배 씨는 다시 광주로 내려와 1980년 4월, 신우아파트 앞 가정집 농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5월 17일 일요일, 박인배 씨는 전날을 어머니와 보내고 공장에 간다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다.
    며칠 후, 5월 22일. 박인배 씨의 동생에게 동사무소 직원이 쪽지 하나를 들고 찾아왔다. 박인배 씨가 총에 맞아 죽어 지금 적십자 병원에 있다고, 쪽지에 적혀 있었다. 박인배 씨의 동생은 쪽지를 차마 어머니에게 전하지 못해, 숙모에게 쪽지를 전했고 숙모가 박인배 씨의 어머니인 이금자 씨에게 박인배 씨의 부고를 전했다. 다음날 이금자 씨는 적십자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그곳에 박인배 씨의 시체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남대 병원으로 향했는 데, 그곳에 겹겹이 쌓인 시체를 본 이금자 씨는 아들의 시체도 저기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생각에 정신을 놓고 기절했다. 외삼촌이 이금자 씨를 쉬게 하고, 여기저기를 헤매던 중 도청 지하실에서 박인배 씨를 발견했다. 이금자 씨가 아들 박인배 씨의 시신 확인 한 뒤, 망월동에 박인배 씨를 안장했다. (증언자 : 이금자)


    "증언자의 증언을 토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실제 사건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도서 : "그해 오월 나는 살고 싶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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